10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보아스가 이방여인 룻에게 호의를 베푼 이유는 룻이 나오미에게 행한 일과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왔기 때문입니다. 즉 보아스는 여호와께서 룻이 행한 일에 보답하시고 온전한 상주기시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룻이 여호와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러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여호와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며 주님의 은혜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되기를 기도합시다.
어제 본문에서 우리는 베들레헴의 유력자인 보아스가 보잘 것 없고 가난하고 모압여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모습을 통해 주님께서 말씀하신 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되고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힌 지극히 작은 형제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주님 자신에게
한 것이라는 천국복음의 삶을 다시금 기억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어제 본문에 이어서 보아스가 나오미에게 베푼 호의에 대한 이유를 드러냅니다. 본문은 보아스가 베푼 호의에 대한 룻의 반응에서 출발합니다: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나는 이방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호의)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10). 즉 이방여인, 특히 모압여인 룻은 보아스의 호의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만 하더라도
모압족속이 남유다를 침약하는 일들이 많았기 떄문입니다. 사실상 모압은 이스라엘의 원수와
같습니다. 그렇기에 13절에서 룻은 자신이 보아스의 하녀(여종)보다 못하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룻의 반응에 대하여 보아스는 자신이 룻에게 호의를 베푸는 이유를 말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히 룻이 행한 일에 대한 보아스의 개인적이며 일반적인 호의를 베푸는
것처럼 보입니다. 즉 보아스가 말하듯, 룻이 그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행한 것과 자기 고향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에 대해 보아스가 호의를 베푸는 듯 합니다(11).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 이러한 룻의 행함은 사실상 믿음의 결단과 그에 따른 믿음의 행동입니다. “분명히 알려졌다”는 것을 볼때, 보아스는 베들레헴의 유력자로서 시어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서 베들레헴에 들어온 모압여인 룻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룻이 행한 일들에 대한 보아스의 개인적이며 일반적인 호의 때문인
듯 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12절에서 보듯 보아스의 호의는 단지 개인적이고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룻에게 보이시는 호의와 보호, 즉 하나님의 은혜를 반영한
것이 분명합니다: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12). 여기에서 보아스가
언급하는 “네가 행한 일”은 단수로 11절에서 언급된 일들 중에서 사실상 룻이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보답한다”는 말이 “안전하다” “평안한”에서 비롯되어 “보상하다”는 의미를 가지는 솨람이라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즉 여기에서 “보답하다”는 말은 무엇보다 모압여인이지만 이스라엘 땅에서 안전하고 평안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이것은 이어지는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신다”는 문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여기에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신명기 32장 11-12절에서 이집트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켜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기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다”는 말씀의 축약입니다. 또한 우리 번역의 “보호를 받다”는 말은 “보호를 받기 위해 도피하다”는 의미로 “(피난처로) 신뢰하다”는 의미까지 포함합니다.
즉 언급된 “온전한 상”은 “온전한 보호”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실상 모압여인인 룻을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과 동등하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대하시고 피난처를 허락하시고 온전하고 평화의 보호를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정식적이고 완전한 칭호를 사용하여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식적으로 허락하는 것임을 드러냅니다.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이방민족이며 심지어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선언하신 그 모압 여인 롯이지만,
그녀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며 그분을
피난처로 삼고 그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오는 믿음의 결단과 믿음의 행동에 신실하게 응답하셔서 허락하시며, 베들레헴의 유력자였던 보아스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며 자신 또한 모압여인
룻에게 호의를 베풉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으며 되돌아와 의지하며 그 날개 아래 머물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받으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런 측면에서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나는 이방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10)라는 말씀을 마치 여호와 하나님 앞에 죄인이 나아가 고백하는 것과 동일한
모습으로 읽는 것은 크게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죄인이지만 주님께로 돌아와
여호와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며 주님의 은혜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되기를 기도합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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