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2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5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6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며느리 룻을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복되게 하려고 나오미는 룻을 보아스가 누운
발치 이불로 들어가도록 합니다. 이것은 룻이 모압여인이기에 어느 누구도 기업무르는 일에 나서지 않는
상황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룻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기업무르는 책임을 보아스에게
요청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도록 합시다.
어제 본문에서 보아스가 룻에게 보여준 호의를 통해 나오미는 하나님에 대한 소망과 믿음의
불씨를 회복하며 다시금 하나님 나라를 향한 믿음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보리추수와 밀 추수를 마친후 2:23) 나오미와 룻이 그러한 소망과 믿음의 불씨를 따라 구체적으로 행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목적은 나오미가 “모압여인 룻이 복되도록 하기 위하여 안식할 곳을 찾는 것입니다”(1). 먼저 나오미는 이것이 모압여인 룻이 이스라엘 땅에서 “복되게 하도록”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우리 번역에 “복되게 하다”(야티브)로 번역된 말은 “기쁘게 하다, 즐겁게 하다”는 의미로 2장 4, 19절에서 언급된 “복되게 하다”(바라크)와는 다른 단어입니다. 또한 우리 번역의 “안식할 곳”은 가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1장 8-9절에서 나오미는 두 며느리들이 모압에서 남편을 찾아 위로를 받기를 원하였지만, 이제는 베들레헴에서 나오미 자신이 직접 며느리를 위해 찾고자 합니다(“내가 너를 위하여”). 이것은 당시의 상황에서 사실상 대부분의 여인들은 결혼하여 가정에서 쉼을
누리며 위로를 얻는 것이 가장 좋고 기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모압여인 룻이 이스라엘
땅에서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적으로 모압여인
룻이 이스라엘 땅에서 남편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나오미는 모압여인 룻을
위해 안식할 곳을 찾습니다. 한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 나오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내용에 따르면, 이미 늙은 나오미 자신은 더 이상 가정(남편과 자녀)에 대한 소망을 가지지 않았습니다(1:11-1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는 자신이 죽은 후 홀로 남을 모압여인 룻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이러한 나오미의 모습은 사실상 “여호와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모압 여인 룻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온전한 상 주시기를 바라는”(2:12) 보아스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나오미의 이러한 행동은 모압 여인 룻이 “이스라엘의 하니님 여호와의 날개 아래에서 안식을 누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오미가 “기업무를 자”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2:20; 3:2). 즉 모압여인
룻이 베들레헴에서 여호와의 날개 아래에서 안식을 누리는 것은 “기업무를 자”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실행됨으로 마침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선적으로 이미 10년의 세월이 지난 이후이고, 엘리멜렉 집안에는 더 이상 가장의 역할을 할 남자(엘리멜렉)가 없기 때문이며, 또한 기업무를 일을 행해야 하는 친족은 단지 단지 두 명만 남은 상태이며(4:4) 심지어 이 두 명조차도 한명은 전혀 관심이 없고 다른 한명인 보아스는 늙었고 이 기업무르는
일이 “손해”를 감수하는 것(4:6)이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룻이 모압여인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든 현실적인 불가능성
속에서도 나오미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나오미가 드디어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였고, 여호와께서는 심지어 모압여인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사람에게
안식을 주실 것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만나교회도 여호와의 날개 아래에 찾아오는 이들이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일을 위해 우리 자신들이 먼저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의지하며 믿음으로 행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한가지 더 짧게 언급하면,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행하라고 말하는 구체적인 내용, 즉 잘 꾸미고 보아스의 발치
이불 안으로 들어가 거기 누우라는 것은 룻이 모압여인이라는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것입니다(신명기 25장5-7절). 뿐만 아니라, 기업무르는 것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땅이나 소유물” 등을 값을 주고 사서 되돌려 주는 것과 둘째는 “자녀가 없이 형제가 죽은 경우에
그 형제가 다시 결혼하여 자녀를 낳아 이미 사망한 형제의 집안에 계승자가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 두 번째의 경우에는 “그 형제가 결혼할 것”(신25:5-6)으로 규정되어 있기에, 사실상 “보아스”는 해당되지 않으며 더구나 이방여인일 경우에는 전혀 가능성이 없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나오미가 룻에서 행하라고 한 것은 그러한 특별한 사정 속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일반화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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