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비록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셔서 성전세를 내실 의무가 없지만, 주님께서는 반세겔의 성전세를 내도록 하십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실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주님께서는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사람들을 위하여 제한하십니다. 이러한 삶의 방법이 천국백성의 삶인 것을 기억하며, 오늘 우리들은 어떠한지 돌아봅시다.
이제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다시금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님과 제자들을 찾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반세겔의 성전세를 걷어 예루살렘으로 보내는 일을 하던 사람입니다. 성전세로 반세겔을 내는 것은 출애굽 30장 11-16절과 38장 26절 등에서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생명의 속전”(출30:12)이라고도 칭하는데, 20세 이상의 사람들이 자신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드리는 것(출30:14-15)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부자라고 해서 더 많이 내거나 가난하다고 하여 더 적게 내지 못하도록
규정되었고(출33:15),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회막(성전)의 일를 위하여 사용하도록 하셨는데, 왜냐하면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 그들의 생명을 대속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출30:16). 즉 이 속전이 성전의 일을 위하여 사용되었기 때문에 성전세라고도 칭했습니다.
즉 20세 이상 이스라엘 사람은 누구나가
내는 성전세이기에 주님께도 징수원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주님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베드로에게 지문합니다: “너희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않느냐”. 이러한 질문은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그리고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적대시하고 시험하여 고발하며 죽이려고 계획을 세우는 상황에서 아주 위험하고 도발적입니다. 누구나가 당연히 여기던 성전세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즉각적으로 고발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질문을 들은 베드로는 “내신다”(Ja)라고 아주 짧게 이야기하고
더 이상 그 사람을 상대하지 않으려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러한 베드로에게 먼저 질문합니다: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즉 은근쓸쩍 넘어가는 베드로에게 분명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즉 주님께서는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성전세를 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당시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던 기준이 주님께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주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가지신 당연하고 마땅한 자신의 권리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제한하시고 성전세를 내도록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27)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은 주님께서 지금까지 가르치시고 몸소 행해 오신 천국복음의
삶을 다시금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방법이 천국백성의 삶인 것을 기억하며, 오늘 우리들은 어떠한지 돌아봅시다.
#마태복음_17장 22-27절, #만나교회, #독일, #프랑크푸르트, #마인츠, #비스바덴, #한인교회, #개혁교회, #Frankfurt, #Korean_Church,
#koreanische_kirchengemeinde, #MannaChurc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