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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2년 2월 21일 월요일 큐티본문설명(마 19:1-12)2022-02-20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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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2 큰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7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많이 악용된 이혼증서의 문제를 통해 주님께서는 율법의 한 기능을 말씀하십니다. 즉 율법의 한 기능은악함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명령과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의 악함을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어제 본문에서 참된 하나님의 천국백성으로서의 교회공동체의 참된 의미에 대하여 서로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라는 말씀으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에서부터는 갈릴리 지방이 아닌 유대지방으로 가신 이후의 일들에 대하여 말해 줍니다. 복음서들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신 이후 적어도 세 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는데, 오늘 본문 이후의 활동은 그 마지막 세 번째 예루살렘 방문 때에 있었던 일들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바리새인들이 찾아와 예수님을 시험한 것을 알려줍니다. 그들의 질문은 교묘합니다: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3). 현대어 성경은 좀더 의미를 살려 번역합니다: “어떤 경우든지 이유가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상관없습니까?”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질문은 사실상 당시 유대인들의 모습을 반영한 질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모세가 말한 이혼증서를 주어서 버리라는 율법의 말씀(신명기 24:1-4)을 악용하여,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간에 이혼증서만 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행했습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이렇게 행했기 때문에, 만약 예수님께서 이것이 옳지 않다고 말씀하시면,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예수님을 비난하고 떠날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이것이 옳다고 말한다면, 사실상 주님께서는 율법을 오용한 관습을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되기에, 바리새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시험에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관습 등이 아니라, 말씀의 구체적인 가르침을 따라서 응답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면서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둘이 한 몸이 될지니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4-6)라는 기본적인 원리를 먼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의 현실을 무시하지 않으시면서 모세를 통해 주신 이혼증서에 대한 말씀이 사람의 마음의 완악함 때문임을 밝히십니다. 즉 타락이후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창조 때 세우신 원리에 예외적 상황이 있으며, 이 경우에만 이혼증서를 주어서 이혼할 수 있음을 밝힙니다. 즉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릴 수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나아가 이 경우에도 이러한 상황을 공적으로 확인하고 판단하여 이혼증서를 주어야만 이혼할 수 있음을 말씀하여, 남편의 악한 욕심으로 인해 이혼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십니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율법의 한 기능이 악함을 제한하는 것임을 배우게 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것을 율법의 시민적 용도라고 표현합니다(3:19; 딤전 2:102). 루터는 시민적 제어는 공공 평화를 위해 그리고 만사를 보존하기 위해 절대로 필수적이고 하나님이 정하신 것으로, 특히 복음의 길이 악인들의 준동과 난동으로 방해받지 않도록 하는데 효과가 있다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의 악함을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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