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7일 월요일 큐티본문설명(마 21:18-22)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無花果)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잎사귀만 무성하고 기대하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무화과나무는
곧 마릅니다. 이 무화과 나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없는 이스라엘과 성전을 가리킵니다.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로써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맺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지난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성전을 정결케 하시며, 보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사람들을 고쳐주셔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등은 화를 내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다음날 예루살렘 성으로 다시 들어오시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행하십니다. 표면적으로는 이른 아침(새벽)이었기에 시장하였기에 길가의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찾아보았지만
열매를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과 행동은 이해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열매가 없는 무화과 나무를 “이제부터 영원토록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선언하시자, 그 나무가 곧 마릅니다. 제자들도 이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이상히 여기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이러한 표면적인 내용을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은 주님께서 이 나무를 향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선언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 이렇게 일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는가? 라는 의문입니다.
당시는 유월절이 시작되기 직전인 3월 경입니다. 그런데 이때에는 무화과 열매가 기본적으로 없을 때입니다. 일반적으로 무화과 나무의 열매의 수확은 6월 경부터 시작하여 10월까지 서너 차례 합니다.
그렇기에 마가복음11장 13절에서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고 언급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선 3월에 무화과나무에게서 열매를 찾으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유월절
즈음에 새 잎사귀와 함께 맺히는 작은 무화과열매(이것을 ‘파게’라고 합니다)를 찾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가장 처음 맺히기 시작하는 열매인데, 상품성이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따서 내버리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해야 이후 맺히는 무화과 열매의 상품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찾으신 무화과 나무는 사람의 관리를 받지 못하는 길가의 나무였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당연히 ‘파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에는 ‘파게’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적으로 이 해에는 이 나무가 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파게’가 있은 다음에 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합니다(예레미야 24:1ff). 즉 주님께서 지금 열매를 찾으시며, 열매가 없자 영원히 열매맺지 못할 것임을 선언하시는 이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다름아닌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열매를 찾으십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형식적이며 외적이며 외식하는 모습만이 가득할 뿐, 주님께서 찾으시는 열매는 볼 수 없습니다. 사실 주님께서 그들에게서 찾으시는 열매는 크고 좋은 열매들이 아닙니다. 가장 처음 맺히는 보잘 것 없는 열매이지만, 그것이 없다면 이후에 더 좋은 열매를 결코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작은 열매들입니다. 그렇기에주님은 그들이 영원히 열매맺지 못할 것임을 드러내시고 확인하시며 경고하십니다. 누가복음 13장6-9절에서 주님께서는 포도원에 심은 무화과열매에 대한 비유를 하십니다. 주인이 삼 년이나 와서 열매를 찾았으나 열매가 없는 무화과를 찍어 버리고자 합니다. 이러한 주인에게 포도원지기는 마지막 한 해의 유예를 청하고 이후에도 열매가 없으면
찍어버리소서 라고 요청합니다. 이 비유에 비추어 보면, 주님께서는 삼 년의 사역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치셨고 몸소 보이셨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되심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러한 주님을 믿지 않고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지도 않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고 성전에 들어가셔서 보여주심으로, 열매맺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우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오히려 화를 낼 뿐입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는 잎은 무성하지만 작은 열매인 ‘파게’조차도 없는 무화과나무가 영원히
열매맺지 못함을 선언하고 그 나무가 곧 마른 것처럼, 민족적 이스라엘도 그렇게 될
것임을 보여주십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자들이 “이상히 여겨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습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즉 제자들의 눈에는 실제적인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만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눈 앞의 무화과나무를 넘어서 가르치십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일 뿐만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고, 이처럼,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무화과나무에게 된 일”이란 것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열매없는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에게 경고하는 예언자적 일입니다. 즉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이러한 예언자적 일을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나아가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고 하는 일”도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이 일도 예언자적 일에 대한 언급으로 제자들이 이러한 예언자적 일을 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주석가들은 “이 산(감람산) 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고 하는 일”을 스가랴 14장 4-5절의 마지막 날에 대한 예언과
관련된다고 해석합니다. 스가랴서의 예언은 마지막 심판 때, 여호와께서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산에 서시고, 이 감람산의 한 가운데가 갈라져 큰 골짜기가 생기고 산의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쪽으로
옮겨질 것인데, 이 골짜기가 피난길이 될 것이며 이 피난길을 따라 도망한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고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이런 내용을
받아 “제자들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임을 말씀하시는데, 즉 제자들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로 피하는 그 피난길이 열릴 것이고 그 길을 따라 피하는 자들은 여호와와 함께 하게 될 것임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믿고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참된 천국백성의 삶의 모습이
전제됩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피할 길이 결코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르며 주님이 가르치신 천국복음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천국백성들이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기도할 때, 참된 구원의 길, 참된 피난 길을 열어 주십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천국백성들이 이러한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참된 구원의 길, 참된 피난길이 열리도록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실 것입니다. 마치 성전에서 주님 앞에 나아온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시며 걷지 못하는 자들을
걷게 하셔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예배하도록 하실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만나교회 공동체가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로써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맺으며, 나아가 믿음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을 향한 구원의 길, 피난길을 세상 사람들 앞에 열고 드러내는 일들을 행하는 주님의 몸된 교회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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