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 15 나를 쓴 것들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16 조약돌로
내 이들을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 17 주께서 내 심령이 평강에서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내어버렸음이여 18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디림이 좋도다
“나”는 조롱거리가 되고 고초와 재난을 당하고 심지어 여호와께
대한 소망까지 끊어져 낙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것이 오히려 소망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주님의 성심하심은 크시기 때문에,
“나”는 재난 중에도 여호와를 바랍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믿으며 주님을 바라며 잠잠히 기다리는 하루의 삶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어제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슬픔의 노래를 부르며 기도하며 부르짖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뢰할 분은 오직 여호와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계속해서 오늘 본문에서 “나”는 모든 백성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고초와 재난을 당하며 재를
덮어썼음을 말하면, 이것이 “내가 복을 내어 버렸기 때문”(17)이라고 고백합니다. 그 결과 여호와에 대한 소망이 끊어졌고
낙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모든 것들을 마음에 기억하며 담아 두어 오히려 소망으로 삼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셔서 우리가 완전히 진멸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나”는 여전히 고초와 재난 중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성실하심이 크기 때문입니다(23).
아침마다 주님의 크신 인자와 긍휼을 베푸시는 이러한 주님의
성실하심을 경험하면서 “나”는 주님의 성실하심에 의지하여
주님을 바랄 것임을 결단합니다. “바란다”로 번역된 야할은
“기다린다”는 의미입니다.
생각해 보면, 극심한 환난과 고초와 재난, 그리고
조롱과 비웃음 속에서도 묵묵히 오직 주님만을 기다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것은
인자와 긍휼을 아침마다 베푸시는 주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고 이것을 확신하며 믿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제 “나”는 이러한 사실을 “나”를
넘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객관적 진리로 선언합니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그러므로)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오늘 우리의 삶 중에서도 아침마다 인자와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고 확신하며 믿으며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며 잠잠히 기다리는 복이 함께 하는 하루의 삶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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