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오 년간을 생존하였더라 아마샤의 남은 행적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한
고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그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예루살렘에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하니라 유다 온 백성이 아사랴를 그의 아버지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으니 그 때에 그의 나이가 십육 세라 아마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잔 후에 아사랴가 엘랏을 건축하여 유다에 복귀시켰더라
전쟁에서 패배한 남유다 아마샤의 신하들은 아마샤에게 반란을
일으켜 아마샤가 라기스 요새까지 도망하였지만 따라가서 죽입니다. 왜냐하면 아마샤가 돌아서서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입니다(대하25:27). 이처럼 왕으로써 하나님을
예배하고 백성을 인도해야 할 본분을 버렸을 때, 하나님과 백성들도 아마샤를 버립니다. 오늘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지켜야 할 본문을 잘 지키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어제 본문에서 살핀 것처럼,
아마샤는 에돔에 대한 승리의 전리품으로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세일 자손의 신들을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경배하고 분향하는 어리석은 짓을 범했습니다. 아마샤가 왜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범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성경은 알려주지 않지만, 역대하 25장 15-16절에서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본문상 선지자와 아마샤가 대화를 하는데, 아마샤가 “우리”(25:16), “그들”(25:20)이라고
복수주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아마샤의 곁에 “왕의 모사”로 일한 어떤 사람들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아마샤는 북이스라엘의 용병들이 돌아가면서 유다의 성읍들을 약탈한 것(대하25:10,13)에 대하여 보복하려고 했을 것이지만, 당시 북이스라엘의 군사들은 오랜 기간 아람과의 전쟁을 경험한 강력한 용사들이었기에, 아마샤가 보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아마샤를 포함한 “그들”(왕의 모사들)은 에돔족속의 신을 의지하였을 것입니다(대하 25:20). 에돔의 신은 “코스”(Qos)인데
그 의미는 “활”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에스라 2장53과 느헤미야 7장 55절에 언급된 “비르고스”란
이름이 “코스의 아들”(son of Qos)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더 생각 할 것은 아마샤는 앞서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는데, 에돔의 신을 자신의 신으로 받아들임으로 에돔사람들에게 호의를 얻고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에돔의 군사들을 함께
동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마샤는 왕의 모사들의 말을 들어 여호와를 버리고
에돔의 신들을 받아들이고 의지하며 나아가 에돔의 군인들도 동원하였지만, 결국 북이스라엘 요아스왕에게
패배하고 포로로 잡히는 굴욕을 당합니다. 그의 나이 39세, 15년간 왕으로 다스렸던 때입니다. 이 전쟁 이후 비록 아마샤가 15년을 더 생존하였으나(14:17), 그의 마지막 시간은 비참합니다. 결국 그 신하들이 반역하여 라기스로 도망간 아마샤를 죽입니다. 왜냐하면
아마샤가 돌아서서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입니다(대하25:26-28).
이처럼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으로써 주어진 본분을 따라 백성들과
모사들을 잘 인도해야 할 아마샤는 오히려 잘못된 모사들의 어리석은 주장을 따라 우상을 섬기며 백성들을 우상숭배에로 인도합니다. 아마샤가 하나님을 성실하게 따를 때 하나님의 복이 함께 하였음을 기억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의 욕심과 우상을 따라 살아가며 주어진 본분에 합당하게 행하지 못하였기에, 결국 하나님께서도 버리셨습니다. 오늘 나의 삶을 살피며 하나님께
순종하며 교회공동체 안에서 주어진 본분을 충실히 행하는 우리들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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