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들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아나니아가 성도를 박해하는
사울을 찾아가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사울이 회개하며 주님의 복음이 증거되는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만나교회와 성도들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음의 진보에 쓰임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오늘 본문은 계속해서 사울의
회심 사건을 알려주면서 사울을 찾아간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주목하여 언급합니다. 다메섹의 성도들은 사울에
관한 소식을 이미 알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들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고
또 다메섹에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 받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9:13-14).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나니아에게 그런 사울을 찾아가라고 명하십니다. 혹시나 다른 사람과 착각을
할까해서 직가라 하는 거리에 있는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을 찾으라고 구체적으로 알려주십니다. 더구나
주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다”라고 아나니아가 할 일을 정확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명령은 아나니아를
비롯한 다메섹에 있던 주의 성도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이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입니다. 그들 중의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의 박해를 직접 당하면서 다메섹까지 도망을 온 상태일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과
그 주변 지역에서의 박해로 인해 가까운 친족이나 친구 등이 어려움을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사울이
다메섹에 들왔다는 소문이 이미 다 퍼져 성도들은 너도나도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숨어야 할지, 도망을
가야 할지 마음졸이며 의논 중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주님께서 나타나 바로 그 사울을 찾아가라고
명하시다니, 아니니아는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나니아는 자신이 들은 사울에 관한 소문들을 주님께 이야기해 보지만, 주님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울이 주님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며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러한 주님의 명령과 말씀은
사실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이 말씀하신
그 집에 들어가서 사울에게 안수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나니아는
사울을 “형제”라고 부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사도행전 묵상을 통해 “형제”라는 호칭과 “성령충만”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충분히 살펴왔습니다. 즉 아나니아는 이미 사울을 그리스도 안에서 참 형제로 받아들였고
심지어 그를 참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합니다. 사울은 이러한 아나니아에게 화답하듯, 보게 되자 마자 일어나 세례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는 며칠 동안에도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합니다. 이러한 사울의 모습에 다메섹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놀라며 또한 당혹해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 듯, 사울의 회심의 결과로 예수님께서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말씀하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그 말씀을 성취하는 복음 전파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됩니다. 로마서 11장 29절에서 말하듯,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은 너무나 깊어서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판단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11:33). 이처럼 아나니아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울을 찾아감으로 놀라운 주님의 복음의 역사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처럼, 오늘 우리 만나교회와 성도들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기도합시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또한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는 말씀이라고 하더라도, 주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는 말씀을 믿고 고백하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만나교회와 성도들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사도행전9장, #큐티, #사울을_부르심, #다메섹, #아나니아, #만나교회,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인교회, #장로교, #고신, #Acts_of_Apostles, #Frankfurt, #Korean_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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