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2일 월요일 큐티 본문설명 본문: 마가복음
10:28-31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여전히 “가장 먼저” 예수님을 따랐다” 라고
우선권을 주장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도 먼저 된 자로서의 우선권을 주장하고 있는지 돌아보도록 합시다. 오늘 본문은 앞의 단락에 이어진 본문입니다. 앞서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의 질문과 관련하여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다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정결법을 지키고 구제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영생의 자리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한 당시의 통념을 철저히
부수시고 인간의 어떤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하신다 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에 뒤이어 베드로는 자랑스럽게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에게 하신 말씀에 슬쩍 숟가락을 얻으려고 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베드로는 당시의 일반적인 통념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즉
베드로의 말은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으므로 ‘더욱 구원의 자리에 가까이 있습니다’ 혹은 ‘영생을 얻을 자격이 됩니다’는
의미입니다. 저 부자청년도 하지 못한 일을 우리는 누구보다도 먼저 했습니다라는 자랑도 포함된 듯 합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하여 영생을 얻는다”는
통념을 뒤집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이상한 말씀을 덧붙입니다: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이미 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며 누가 내 형제와 자매들이냐”라고 질문하면서, 예수님의
옆에 있는 이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형제요 자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뒷부분에 있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라는 말씀의 의미는 참된 믿음의 형제자매들, 하나님의 가족됨을 의미하며
이들이 모이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가리킵니다. 또한 우리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이런 전체적인 문맥의 의미를 생각하면, 참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 예수님의 곁에 있는 자들, 참된 하나님의 가족이 지금은
제자들 몇몇에 불과하지만, 장차 많아질 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은근슬쩍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을 향한
꼬집는 말씀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즉 베드로는 자신들이 먼저 예수님을 따랐다고 하는 우선권과 특권을 말하고자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그런 생각들과 통념은 세상적인 가치관임을 알려줍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옆에서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 한 명은 십자가에 달려 죽기직전, 즉
늦게 예수님을 믿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일에 있어 사람의 편에서는 어느 누구도 우선권이나
특권이나 조건을 말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이며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누리며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마가복음 #큐티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인교회 #장로교회 #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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