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10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11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13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그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리더라 14
왕과 그와 함께 있는 백성들이 다 피곤하여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쉬니라 15 압살롬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이르고 아히도벨도 그와 함께 이른지라 16 다윗의 친구 아렉 사람 후새가
압살롬에게 나갈 때에 그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만세, 왕이여 만세 하니 17 압살롬이 후새에게 이르되 이것이 네가 친구를 후대하는 것이냐 네가 어찌하여 네 친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18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에게 속하여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이다
어제 본문에서
어려움과 위기에 처한 다윗의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감람산길을 넘어 도망하는 다윗을 찾아온 시비와 시므이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특히 다윗을 저주한 시므이에 대한 다윗의 반응을 알려줍니다. 시므이의 저주를 들었던 다윗과
신하들 중에 가장 먼저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나서서 시므이를 „죽은 개“로 부르면서 그의 머리를 베도록 다윗에게 허락을 구합니다(9).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요청에
화를 냅니다. 다윗은 „스루야의 아들들아“(10)라고 불러 아비새의 요청이 요압의 요청이기도 함을 분명히 합니다. 아마도 요압은 반역을 한
압살롬을 불러온 것이 자신이었기에 감히 나서지 못하고 동생 아비새를 내세운 듯 합니다. 나아가 다윗은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11)고 언급하면서,
시므이의 그러한 모습이 세상적으로 볼 때 당연함을 인정합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그것을
넘어서 다윗을 저주하는 시므이의 모습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으로 받아들이며 따라서 시므이에게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나 할 자가 없고“(10), „다윗을 저주하도록 놓아두라“(11)고 말합니다. 이것은 사실상 다윗이 밧세바와 범죄한 결과로 인한 것으로 여호와의 심판의 뜻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12:10-12). 뿐만 아니라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소망도 피력합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12).
여기에서 다윗이 말하는 „나의 원통함“은 자신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선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시므이가 언급한 „사울의 족속의 피“(7-8)에 대한 원통함입니다. 어제도
살펴보았지만, 다윗에게는 사울의 족속의 피에 대한 책임이 없으며, 또한
하나님의 심판도 사울의 족속의 피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데 시므이는 지금 다윗이 당하는 어려움이 마치 사울의
족속의 피를 흘린 것 때문인 것처럼 호도하며 왜곡합니다. 당연히 다윗으로서는 „원통“(고통, 비참)한 일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원통함을 자신이 직접 그 자리에서 갚거나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손에 맡기며 소망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신의
원통함을 선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12). 그렇게 다윗은 계속해서 광야로 나아가는 그 도망길을
피곤하기까지 걸어가고 그 뒤를 시므이는 따라가며 저주하고 돌을 던지고 먼지를 날립니다(13-14).
16절부터는 그러한 다윗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첫 걸음입니다. 앞서 다윗은 자신과 함께 나아온 친구 아렉 사람 후새를 압살롬에게로 돌려보내었고,
친구 아렉 사람 후새는 위험을 무릎쓰고 다윗의 말을 따라 돌아갔습니다. 이제 드디어
후새는 압살롬을 만나 그를 왕으로 부르며 만세를 외치지만, 압살롬으로써는 당연히 이러한 후새를 의심합니다:
„어찌하여 네 친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17). 의심하는 압살롬에게 후새는
친구를 따르지 않고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에게 속하여 그와 함께 있을 것“(18)이라고 천명하여 압살롬이 바로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인 듯 언급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압살롬이 아니라 다윗이 하나님이 택한 자이며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택한 자입니다. 압살롬이 착각한 것과 그 결과 후새를 받아들이는 것은 앞서 다윗이 말한 하나님의 손에 맡기며 선으로 갚아주실 것에 대한 소망이 이루어지는
첫 단추입니다.
때로 우리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으며, 그러한 우리들을 비웃고 욕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할 때, 다윗과 같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믿음과 소망이 우리들에게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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