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에 다윗의 소년들이 돌아서 자기 길로 행하여 돌아와 이 모든 말을 그에게 전하매 13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하니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사백 명 가량은 데리고 올라가고 이백 명은 소유물 곁에
있게 하니라 14 하인들 가운데 하나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우리 주인에게 문안하러
광야에서 전령들을 보냈거늘 주인이 그들을 모욕하였나이다 15 우리가 들에 있어 그들과 상종할 동안에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선대하였으므로 우리가 다치거나 잃은 것이 없었으니 16 우리가 양을 지키는 동안에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어 밤낮 우리에게 담이 되었음이라 17 그런즉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지를 알아 생각하실지니 이는 다윗이
우리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였음이니이다 주인은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나이다 하는지라 18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19 소년들에게 이르되 나를 앞서 가라 나는 너희 뒤에 가리라 하고
그의 남편 나발에게는 말하지 아니하니라 20 아비가일이 나귀를 타고 산 호젓한 곳을 따라 내려가더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내려오는 그들과 마주치니라 21 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서 나의 선을 갚는도다 22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 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어제 본문에서
사무엘의 죽음과 더불어 다윗은 이스라엘 남쪽 국경인 바란 광야로 도망하여 그곳에 있는 부자 나발에게 양식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한 상황에서 다윗의 반응과 나발의 종들과 아내 아비가일의 반응을 보여주면서, 그 의미를 드러냅니다.
먼저 다윗은 나발의 모욕을 전해 듣고, 곧장 스스로 칼을 차고 자기 사람들 사백명에게도
칼을 차라고 명하며(12-13),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렇게 맹세까지 합니다: „그가 악으로서 나의 선을 갚는도다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 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21-22). 이러한 다윗의 모습은 이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사적인 보복을 천명하는
모습으로 이전의 사울 왕과 비슷한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맡겼던 다윗의
모습은 사라지고 사울왕의 모습을 닮아가는 다윗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다윗은 긴 시간동안 도망자의 삶을 살며 지쳤고, 더구나 자신을 뒷받침해 주던 선지자
사무엘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죽었고, 자신은 이제 유대 땅의 남쪽 끝 바란 광야에서 정처없이 살며,
나아가 사울 왕조차도 자신에게 부정적인 관심조차도 기울이지 않는 상황에서 비록 부자였지만, 아무런 정치적 영향력과 군사적 능력을 가지지 못한 나발조차도 자신을 무시하며 모욕한 것에 지금까지 눌러왔던 분노가 폭발한 듯 합니다.
사실상 다윗은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어려운 삶을 살아갈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사울왕과 같이, 자신의 능력과 칼로 스스로 길을 만들며
일어설 것인가의 갈림길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은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며 동정이 됩니다. 우리들 또한 믿음의 길을 걸어가면서 때때로 이와 같은 갈림길에 설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갈림길에
서 있는 다윗의 모습과 대비하여, 나발의 집안에서는 집 주인 나발의 어리석은 말과 행동으로
인한 죽음의 위험을 감지하고 지혜롭게 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 한명은 나발의 종입니다.
나발의 많은 종들 중에서 한명은 감히 행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합니다. 그는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자기 주인 나발을 „불량한 사람이라 더불어 말할 수 없다“(17)고 언급하면서, 자초지종을 알리고 아비가일에게 „어떻게
할지를 알아 생각하라“고 전합니다. 이러한 이 종의 말과 행동은 사실상
자기 생명을 건 것이며, 더 나아가 자기 주인과 주인의 온 집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비가일이 자기 남편 나발에 대한 종의 언급을 자기 남편을 모욕하는 것으로 여기고 나발에게 알리는 경우, 이 종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는 명약관화합니다. 문맥에서 볼 때, 이 종은 이러한 모든 것을 감수하고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알렸습니다.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도 지혜롭게 행합니다. 비록 종의 말이 자기 남편 나발을 모욕하는 언사이지만,
그 상황과 급박함을 인지하며 나아가 자시 남편 나발의 어리석음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비가일은 자기 남편 나발에게는 알리지 않고, 급히 필요한 일들을 행합니다.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뽂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가 뭉치 이백
개를 나귀에 실어 종들에게 먼저 가도록 합니다. 또한 종들만 보낸 것이 아니라 아비가일 자신이 직접 나귀를
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만나러 따라 갑니다. 이러한 아비가일의 행동은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자기 생명을 건 모습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다윗은 자기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받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까지 하였기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여인 홀로 칼을 차고 말을 달려 오는 사백명의 군사들 앞에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이와 같이 어리석은
나발과 달리 그의 종과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급박한 상황에서 자기 생명을 걸고 나서는 지혜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본문은 이러한 두 사람의 생명을 건 지혜로운 말과 행동에 대해 갈림길에 선 다윗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 것인지 관심을 가집니다.
때로 우리의 믿음의 삶에도 급박하고 어려운 상황이 있습니다. 그러할 때에 우리들도
지혜롭게 행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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