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20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21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22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24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25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어제 본문에서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구한 것이 큰 죄악임을 선언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레와 비로 그것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러한 사무엘의 고발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음을 인정하며 그러한 자신들이 죽지 않도록 여호와께 기도하도록
사무엘에게 요청합니다(19).
백성들은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라고 말하는데, 여기에서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종들의 자격을 상실하였음을 알았고,
그렇기에 여호와를 „우리의 하나님“이 아니라
„당신-사무엘-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왕을 구하기 전이었던 사무엘상 7장
8절에서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여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백성들은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라고 요청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받음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스스로가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님을 자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왕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나라들처럼 자신들이 원하여 세워진 바로 그 왕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사울 왕의 입장에서는 매우 당혹스러운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왕으로 세워진 것이 바로 백성들이 큰
죄악으로 고백한 결과가 되며, 또한 백성들은 사울 왕의 종들이 아니라 사무엘의 종들이라고 스스로 고백하며,
심지어 여호와의 손에서 구원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은 왕인 사울이 아니라, 사무엘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사울이 자신을 왕으로 세우는
백성들을 향해 거절을 표하지 않은 것은 그 자신이 백성의 왕이자 대표가 되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표현이기에, 사실상 죄를 고백하는 백성들의 제일 앞에서 죄를 고백하며 사무엘에게 기도를 부탁해야 하는 것은 왕으로써의 사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사울의 왕됨이 백성들의 죄악의 결과이기에 사울 스스로는 어떻게 행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문제는 이후로도 계속해서 사울에게 남아있는 역설이며 아이러니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그러한 사울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본문은 백성들의 죄고백과 기도부탁에 대한 사무엘의
응답으로 바로 넘어갑니다.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크게 네 가지를 말하는데, 두려워하지 말고, 너희가 실제로 악을 행했지만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무엘의 요청은 지금까지 말한 내용들에 따르면,
사실상 모순되며 근거가 없습니다.백성들이 구한 것, 즉 다른 나라들과 같이 세워진 왕은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에 불과합니다(21). 즉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스스로를 구원하고 다스리고 관철하고자 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적 능력과 방법과 지혜의 헛됨에 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없이는 결국 헛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헛됨“(비어있는 것)이라는
단어는 창세기 1장 2절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작업이 진행되는 „공허“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이 악한 죄악을 범한 민족에게
여전히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을 수 있습니까?
사무엘은 그
근거와 이유를 22절에서 드러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언제나 이스라엘 민족의
번영이나 안위보다 더 큰 의미와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크신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도 자신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이며 비록 이스라엘 민족 자체에게는 아무런 기뻐할
것이 없으며 심지어 하나님을 버리고 악을 행할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고 그들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근거이며 소망입니다.
이와같이, 처음부터 죄인이었던 우리들이 구원받은 근거와 이유, 나아가 구원받았음에도 때때로 욕심을 따라
살며 죄를 범하는 우리들이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바라며 죄를 고백하며 주님의 회복케 하심을 소망할 수 있는 이유와 근거도 바로 이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자를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음을 붙잡고,
마음을 다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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