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어제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고 원했던 마지막 유월절 식사자리에서 새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를 파는 자가 누구인가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계속해서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기다리고 원하셨던 마지막 유월절 식사와
새 언약을 세우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제자들은 „자기들 중 누가 크냐“라고 다툼(논쟁)을 벌입니다. 감사와 은혜를 나누는 그 자리가 다툼의 자리로 탈바꿈합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주님이 세우신
새 언약에 참여하는 자로 더 높은 자리에 앉기 원했던 것 같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주님께서 새 언약을 세우시는 그 십자가의 죽음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에게 새 언약에 참여하는 자들은 세상의 방식과는 다르게 참여하며 그 언약을 누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임금들은 주관하며(지배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자선가)이라 칭함을 받습니다. 여기에서 집권자는 권세를
행하는 사람으로 왕 등의 아래에서 직접적으로 권세를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당시 그러한 집권자들은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자선사업과 구제를 많이 하였기에 대중으로부터 자선가로 불려 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들로
새 언약에 참여하는 자들은 „섬기는 자“(식탁의 봉사-디아코네오-집사)로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섬기는 자“(디아코네오)로 그들 중에 계셨기 때문입니다(25-27). 달리 말하면, 주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으로 새 언약에 참여하는 자들을 섬기셨습니다. 나아가 주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그 나라를 그러한 제자들에게 맡겨 주님의 상에서 먹고 마시며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을 다스리도록 하려고 하십니다.
즉 지금 주님께서 마지막 유월절 식사와 새 언약의 첫 식사에서 자신의 몸과 피로 제자들을 섬기듯, 그 언약에 참여하는 제자들도 계속 이어지는 주님의 나라의 주님의 상에서 먹고 마시며 새 언약의 백성들을 섬겨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은 주님께서 세우신 새 언약의 식사에 참여하지 않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보좌에서 정죄하는 일도 할 것입니다(30,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크리노, 비난하다 정죄하다 판결하다).
이제 주님께서는
직접적으로 시몬 베드로에게 사탄이 너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지만, 주님께서는 시몬 베드로를
위하여 그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31-32). „밀 까부르듯“이라는 말은 타작마당에서 밀을 때려 그 알맹이와 껍질은 분리하여 바람을 불어 껍질과 알맹이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이것을 하기 위해 시몬 베드로를 요구하였다는 말은 시몬 베드로가 쭉정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사탄이 요청하였다는 의미입니다.
달리 말하면, 유다와 같이 시몬 베드로도 쭉정이에 불과하며 비록 주님의 새 언약의
식사 자리에 앉아 있지만, 결국 믿음이 없는 자이며 앞서 언급한 정죄받을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 속한 자임을
드러내어, 주님께서 새 언약의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맡기시는 그 일들이 모순되며 의미가 없음을 폭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위해 그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십니다. 여기에서 „믿음이 떨어지다“는 표현은 „믿음이 실패하다, 그치다“는 의미입니다.
즉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믿음이 그치지 않고 실패하지 않도록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나아가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32)고 명령하십니다. „돌이키다“는 말은 „복귀하다 되돌아오다“ 는 의미로 베드로가 일시적으로 믿음에서 멀어질 것을 담고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비록 베드로가 믿음에서 멀어지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으로 다시 믿음으로 되돌아올 것을 확신하며 그러한
베드로이기에 그와 같이 믿음이 흔들리고 일시적으로 믿음에서 멀어지는 새 언약의 형제자매들을 „굳게 하라“(믿음에 굳게 고정하다, 믿음에로 단호히 되돌리다)고 명령하십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새 언약에 참여하며 주님의 상에 앉은 믿음의 형제자매들이지만, 제자들처럼 세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 믿음이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된 새 언약의 백성이라면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셔서 우리가 믿음에 실패하지 않도록 하시며, 주님의 성찬의 자리에 앉아 형제자매들을 섬겨
그들을 섬겨 흔들리는 믿음을 굳게 세울 수 있도록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어리석고 흔들리는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우리 또한 믿음을 굳게 세우며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자로 살아가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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