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어제 본문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주님께서는 주님을 시험하고자 하는 한 율법교사의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행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으셨고 그에 대한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나아가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도움을 베푸는 사람이 그 사람의 이웃임을 말씀하시면서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라“고 율법교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계속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머무실 때 있었던 일입니다(요한복음 11장에 따르면 마르다와 마리아는 나사로와 함께 베다니에 살던 가족으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였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요한복음 11장에 비해 누가복음 10장이 시간적으로는
앞서는 것 같습니다). 마르다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고 대접하기 위하여 분주하게
이런 저런 일들을 합니다. 반면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마르다는 이런 마리아의 모습에 불만을 품고 예수님께 불평하며 자신을 돕도록 말씀해 주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마르다의 모습은 세상적인 가치관에 있어서는 당연한 요청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적인 가치관에서는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우선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마리아의 모습이 더욱 좋다(선하다)고 말씀하시면서 마리아는 „이 좋은 것“(선한 것)을 선택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한가지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참고1)
흔히 이 말씀을
섬기는 것/봉사와 말씀을 듣는 것의 대립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만,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달리 말하면, 주님의 말씀은 봉사의 가치나
봉사의 유무 등에 대하여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앞선 문맥인 율법교사의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알려주시는 가르침입니다.
마르다는 앞선 문맥의 율법교사와 유사한 모습입니다. 즉 마르다는 자신이 행하는 것이
말씀을 듣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이것은 한걸음 더 나아가 분주하게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자신이 가만히 앉아 말씀을 듣는 마리아보다 더 낫다는 마르다의 속마음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일들로
분주한 마르다의 모습은 율법교사에게 하신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말씀을 따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마르다에게
주님께서는 여러 가지 일들을 행하기 위해 „염려하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좋은 것(선한 것)“이며 마리아는 이것을 택하였기에 빼앗기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42
참고1)입니다. 문맥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이미 앞선 9장35절에서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선언하신 것을 받습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 이 문맥에서 제자들이 들어야 하는 주님의 말씀은 십자가에서의 죽음에 대한 주님의 말씀입니다(9:20-22).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들었던 마리아만 자신의 향유를 주님께 부름으로 주님의 죽으심을 준비하였다는 것(마26:12; 요12:7,8)을 볼 때,
마리아가 귀를 기울여 들었던 말씀은 주님의 죽으심에 대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결론적으로 주님께서는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하여 율법학자에게 주신 „가서 이를 행하라“는 답과 달리, 제자들에게는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을 답으로 주십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을 믿는 것만으로
영생을 얻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참고1. 우리 번역에는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고 되어 있으나, 사본들은 „한 가지만으로도 족하다“는 것을 지지합니다. 표준새번역(공동번역,
한글KJV, 현대어, 현대인)은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하나뿐이다“로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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