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복음의 은혜는 받은 이들의
삶과 가치관을 바꿉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변합니까? 당신은
복음의 은혜를 받았습니까? 당신의 삶과 생각은 어떻게 변화되고 있습니까? 어제 본문을 통해 우리는 사도들과 제자들이 어려움과 위협 앞에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은 믿는 자들의 구체적인 변화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변화의 첫 모습은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들 간에도 “한 마음과 한 뜻이 된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하심과 말씀의 은혜는 그러한 나누어진 마음과 뜻을 하나로 묶어 줍니다. 여기에서 “한 마음과 한 뜻”은
사람의 뜻이나 방법, 가치관과 생각이 아닙니다. “한 뜻과
한 마음”은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며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순종하였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7, 28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하면서 “너희가 한 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드려워하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오늘 본문에서 교회와 성도들은
어려움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일에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생각이나 제안이나 가치관이나 방법에 동의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함에 있어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함에 있어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는 것의 구체적인 예로 “자기에게 속한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함께 나누는 것”을 말해줍니다. 대부분의 번역은 34-37절의 말씀에 비추어 “물건”과
“재물”이라고 한정하여 번역하고 있지만, 원래 의미는 “자기에게 속한 것”과
“모든 것”입니다. 즉
단순한 물건이나 재물을 넘어선 “권리의 나눔”을 의미합니다. 헬라사회나 유대사회에서 “권리의 나눔”은 “동등한 신분의 친구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형태의 우정”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를 믿는 믿음의 공동체는 그러한 신분의 동등성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또한
사람의 우정이 중심이 아닌 “예수를 믿는 믿음과 예수의 말씀에의 순종”이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나눔에는 민족이나
신분이 벽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자인 것과 가난한 것이 벽이 되지 않습니다. 주인인 것과 노예인 것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나눔의
중심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은혜가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은혜가 중심이 된 것은 31절과 33절에서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사도들이 예수의 부활을
증언할 때 믿음으로 받은 큰 은혜”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는 사도들의 중심성은 믿는 자들의 삶의 변화의 한 가지로 이야기되는 재산을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는 표현이
35절과 37절에서 두 번 반복되어 강조됩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주었고 그 결과 그들 중 가난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34,35). 즉
믿음의 공동체의 구체적인 삶의 행위도 사도들을 통하여 전해진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사도행전 6장에서 사람들이 더 많아졌을 때, 이런
구체적인 구제의 일을 하기 위하여 집사들을 선택하면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6:3) /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6:5)을 선택하는 것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의 은혜는 받은
이들의 삶과 가치관을 바꿉니다. 재물을 남을 위해 내어 놓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정당한 자신의 권리”를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지 않는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은 삶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가 있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오직 예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가능합니다. 빌립보서 2장5-8절은
“너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명령하면서
그 마음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초대
교회와 성도들이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삶과 가치관을 바꾸었습니다. 오늘 우리 만나교회와 성도들도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 그리스도의 은혜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사도행전, #큐티, #초대교회, #성령충만, #교회의_삶, #성도의_삶, #만나교회,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인교회, #장로교, #고신, #Acts_of_Apostles, #Frankfurt, #Korean_Church,
#koreanische_kirchengemeinde, #Mann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