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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0년 10월 10일 토요일 큐티본문설명(왕상 3:1-4)2020-10-09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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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윗의 법도를 따라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당시의 풍습과 관습에 따라 정략결혼을 하고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며 세상의 눈에 심지어 크고 좋아 보이는 산당이 있는 기브온으로 가서 일천번제를 드립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말씀에 따라 행하고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문화와 관습,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서 행하는 잘못은 없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어제 본문은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졌다는 마지막 언급을 통해 다윗에게서 솔로몬에게로 왕권에 완전하고 온전하게 전해졌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인 3장부터 11장까지는 솔로몬이 왕으로 다스린 시기에 대하여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따라 왕이 된 솔로몬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인도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과연 솔로몬은 어떻게 했을까?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다스린 시기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네가지 핵심적인 내용들을 통해 보여줍니다.

첫째는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했다는 것입니다(3:1). 이것은 한편으로 솔로몬 왕 시대에 이스라엘의 정치적 안정과 영향력이 확대되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1 36-37절에서 하나님이 솔로몬과 함께 계셔서 그의 왕위를 다윗 왕의 왕위보다 더 크게 하시기를 원한 브나야의 소망이 이루어졌음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솔로몬 왕은 이방민족과의 결혼관계를 금지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당시 주변 왕국들처럼 이방민족과의 결혼관계를 통해 정치적 안정과 영향력을 얻고자 한 것을 알려줍니다.

 

둘째는 솔로몬이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주위의 성의 공사를 시작하고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것입니다(3:1). 이러한 대규모 공사는 솔로몬 이전과 이후에도 이스라엘에는 없었던 일입니다. 왕상 9 10절에 따르면, 이러한 건축공사는 20년 이상의 기간동안 진행되었습니다(6:38에 따르면 성전은 7년만에 완공, 7:1에 따르면 자기왕궁은 13년만에 완공). 그러나 공사를 진행한 두로왕 히람에게 갈릴리 땅의 성읍 20곳을 넘겨주었고(왕상9:11-13), 왕상 9 24절에 따르면 솔로몬의 이러한 대규모 건축공사는 성전을 건축하는 것 뿐만 아니라 바로의 딸을 위하며 주변 왕국들을 따라서 왕권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셋째는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않아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산당높은 곳이란 뜻으로 백성들이 산의 높은 곳은 어디에서나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비록 사무엘 시대에 사무엘 선지자가 곳곳을 다니며 백성들을 위해 함께 제사하던 장소들도 산당이라는 이름으로 칭해지지만(삼상 9:12-25; 10:5, 13), 사무엘이라는 선지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산당은 가나안 민족들이 그들의 신을 섬기는 장소들로 이스라엘 전역에 흩어져 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러한 산당들을 모두 허물도록 명령하셨습니다( 33:52; 12:2,3). 특히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한다고 금지하시면서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제사를 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12:4-28).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두실 곳을 말씀하셨기 때문에(삼하 7:6-8; 왕상 8:16, 29), 더 이상 산당에서의 제사는 허락되지 않아야 했습니다.

 

넷째는 여호와를 사랑하고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고 분향하였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사랑하였다는 이 평가는 구약성경의 인물들 중 오직 솔로몬에게만 사용됩니다. 비록 신명기 6 5절에서 마음, ,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7:9; 10:12; 11:1, 22, etc.) 고 말씀하셨지만, 정작 개인에게 이것이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받는 것은 솔로몬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명령과 함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신다고 수없이 말씀하셨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사랑하였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다윗은 그런 평가를 받기 보다는 스스로 내가 여호와를 사랑합니다라고 시편에서 많이 말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이어지는 4절은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크기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가까운 곳에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신 언약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이방신들을 섬기던 다른 왕국의 왕들을 본받아 크고 많은 제물들을 받치는 것에 중점을 두며 기브온까지 나아갑니다. 나아가 기브온은 베냐민 지파의 영역으로 특히 사울의 고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솔로몬은 사울과의 전쟁에서 아버지 다윗에 의해 많은 피를 흘린 것에 대한 속죄와 화해의 표시로 기브온으로 내려가 천마리의 희생 번제를 드림으로 솔로몬 자신부터는 온전한 하나의 왕국을 이루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포로이후의 기록인 역대상 16 1, 39-40; 21:29; 역대하 11-13절에 따르면, 당시 언약궤는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메어 올렸고, 회막(성막)은 기브온에 여전히 있었습니다. 역대하 15절에 따르면, 제사를 드리던 놋제단이 기브온의 회막(성막)에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솔로몬이 이 놋제단에서 번제를 드리기 위해 기브온의 회막(성막)으로 나아간 것으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설명은 지난 주일 공부한 것처럼, 역대기는 포로에서 회복된 이후의 기록으로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신 이유에 강조점을 두어 설명하기 때문에 솔로몬이 기브온에 가서 제사를 드린 것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열왕기서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솔로몬이 예루살렘의 언약궤 앞에 와서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한 것(왕상3:15)에 대한 설명이 역대기서에서는 빠져 있습니다.

 

솔로몬에 대한 이러한 네 가지 평가와 설명은 이후 이어지는 솔로몬의 시대와 나아가 이후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오늘 본문의 솔로몬에 대한 평가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말씀에 따라 행하고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문화와 관습,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서 행하는 잘못은 없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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