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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0년 11월 24일 화요일 큐티본문설명(눅 1:5-11)2020-11-24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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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로마의 식민지라는 암울한 시대이고, 아이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주변의 유대인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중에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서며 주의 말씀을 흠이 없이 행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과 형편을 넘어서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서기를 소망하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립시다.

 

오늘 본문은 우리 주님께서 이땅에 오신 것은 유대와 헤롯 때에 있었던 일임을 밝히면서, 특히 제사장 사가랴와 그 아내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에서 언급된 헤롯은 소위 헤롯대왕을 가리킵니다. 로마의 권력을 뒤에 엎고 유대의 왕이 된 헤롯대왕은 자신의 부인들과 아들들을 권력 때문에 죽일 정도로 포악한 왕이었습니다(아래 참고1 헤롯). 뿐만 아니라 로마로부터 대제사장 임명권까지 확보하여 무려 7명의 대제사장을 갈아치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암울한 시대에도 여전히 소망과 약속을 따르는 이들이 있었으며, 본문은 특별히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언급합니다. 비록 나이가 들었고,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비록 제사장이었으나 사가랴는 사람들로부터 의심받고 있었습니다(cf. 1:21). 그러나 본문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평가하면서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고 말합니다. 주의할 것은 그들이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평가받은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어서” “흠이 없이 행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보내는 의심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사가랴는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충실히 행하는 것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아래 참고2 반열).

 

생각해 보면,, 그들의 집이 유대 산골에 있었고(1:39; 예루살렘에서 조금 떨어진 En Kerem으로 알려져 있다) 나이가 상당히 들었고, 나아가 자녀가 없었다는 사실로 인해, 사가랴는 반열을 따른 제사장의 임무에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거나 참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제비를 뽑게 되자, 성전에 들어가 분향합니다(일곱 등잔에 등불을 켜고 등잔을 점검하고, 손질하며 향기로운 향을 사르고, 진설병을 진설하는 일, 27:20-21, 30:7-8; 24:1-8). 즉 제사장이라는 자신의 직분의 직무를 성실하게 행합니다.

 

이러한 사가랴의 모습을 따라서, 우리들도 상황과 형편을 넘어서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서기를 소망하며 주님의 오심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직분의 직무을 성실하게 행하도록 합시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참고1 헤롯

헤롯의 아버지는 안티파트로스라는 사람으로 에돔 족속이었으나 유대교로 개종한 유력 가문이었습니다. 안티파트로스는 나바테아 왕국(유명한 페트라를 건설)의 공주 키프로스와 결혼하여 첫 아들은 파사엘이고 둘째 아들이 바로 헤롯입니다. 이 당시 유대지역은 유대인들의 하스몬 왕조(B.C. 14-63)가 다스리던 시기로,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온 후 처음으로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지위를 획득한 시대입니다. 이 시대에는 최고통치자직과 대제사장직을 하스몬 왕가에서 독차지하였던 시대입니다. BC 67년 경, 형제였던 힐카누스 2세와 아리스토불로스 2세가 세력다툼을 하게 되어 동생 아리스토불로스 2세는 왕이 되고, 형 힐카누스 2세는 대제사장직을 계속 유지합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헤롯의 아버지 안티파트로스는 형 힐카누스 2세를 꼬드겨 동생 아리스토불로스 2세를 제거하고 왕과 대제사장직을 겸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처가인 나바테아 왕국의 아레타스 2세에게서 5만의 군사를 빌려 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생 아리스토불로스 2세는 은 300달란트르 들고 다마스커스(다메섹)으로 가서 로마 집정관 폼페이우스의 부장이었던 스카우르스와 로마군을 데리고 돌아옵니다. 나바테아 왕국의 아레타스 2세는 당시 강력하였던 로마와 맞서기를 꺼려 군대를 철수시켜보립니다. 이 일을 계기로 힐카누스 2세와 아리스토불로스 2, 그리고 안티파트로스 모두 로마의 힘을 실감하고 세 사람 모두 당시 동방원정을 와 있던 집정관 폼페이우스에게 뇌물을 바쳐 유대 지방의 권력을 잡으려고 시도합니다. 집정관 폼페이우스는 두 형제 사이를 중재한다는 이유로 오히려 팔레스타인 정복에 나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점령합니다. 이때 폼페이우스와 사이가 좋았던 안티파트로스가 유대의 권력을 차지합니다. 이후 폼페이우스가 죽고 카이사르가 로마의 실권을 차지하자 안티파트로스는 카이사르의 편이 되고, 특히 카이사르가 이집트에서 곤경을 겪을 때, 구원해줍니다. 이후 카이사르는 권력을 잡고 안티파트로스를 유대의 행정장관으로 임명합니다. 안티파트로스는 자신의 첫 아들 파사엘은 유대와 이두매의 행정장관으로 임명하고 둘째인 헤롯은 갈릴리의 행정장관으로 임명합니다. 그러전 중 BC 43년 카이사르가 암살되고 같은해에 안티파트로스도 독살을 당하자, 파사엘과 헤롯은 권력다툼을 시작하는데, 헤롯은 로마의 권력자 안토니우스 편에 가담하여 도움을 얻습니다. 이때쯤 하스몬 왕조의 마지작 왕손인 안티고누스가 파르티아의 힘을 빌력 권력을 회복하려고 유대지방을 공격하여 파사엘을 죽이고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헤롯까지 죽이려 하였으나 헤롯은 로마로 도망해 목숨을 건집니다. 이후, 로마의 원로원에 의해 유대의 왕으로 임명받고, 안토니우스의 도움으로 파르티아 군을 격퇴하고 헤롯은 안티고누스를 처형합니다. 당시 헤롯은 이미 도리스라는 부인과 아들까지 있었으나 하스몬 왕조의 공주이며 안티고누스의 조카인 미리암과 새롭게 결혼하여 왕권의 정통성을 확보합니다. 이때부터 헤롯은 유대지방의 실질적인 통치자이자 왕으로 로마에게 인정받았고 심지어 로마로부터 유대교의 대제사장을 임명할 권한까지 받아 7명의 대제사장들을 임명합니다. 이렇게 로마의 세력을 등에 업고 유대의 권력을 차지한 헤롯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하스몬 왕가의 공주였던 자신의 아내 미리암과 그녀가 낳은 알렉산드로스와 아리스토불로스 4세를 처형합니다. 또한 첫부인인 도리스가 낳은 첫 아들인 안티파트로스 2세도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허락을 얻어 처형합니다. 이때, 아우구스투스는 헤롯의 아들이 되느니 헤롯의 돼지가 되는 것이 낫다. 적어도 헤롯이 돼지는 안 잡아먹을 테니까라며 헤롯을 비웃습니다.

 

참고 2 반열

아비야 반열이라는 것은 다윗의 시대에 레위지파를 24개 그룹으로 나누어 아론의 후손들인 제사장들과 일반 레위인들을 각기 정한 날짜와 순번에 따라 일주일씩(1년에 2) 성막과 성전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를 행하게 하였는데, 그 중의 한 그룹으로 여덟 번째 순서입니다(대상 24:1-18; 대하8:14; 왕상 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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