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년 7월 22일 월요일 큐티본문설명(창세기 39장 20-23절)

글보기
제목2024 년 7월 22일 월요일 큐티본문설명(창세기 39장 20-23절)2024-07-22 08:21
작성자
첨부파일만나로고 원-1.png (15.6KB)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지난 토요일 본문에서 요셉은 여주인의 명령이 큰 죄악임을 지적하고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거절하고 그 결과 거짓된 모함과 고발을 당하여 주인의 분노를 받아 왕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하고 자기 주인 보디발에게 충실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삶을 살던 요셉이지만, 그 결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요셉을 통해 과연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형통케 하신다는 의미는 무엇이며, 좀더 넓은 문맥에서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삶은 과연 무엇인가 를 질문합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요셉이 왕의 감옥에 갇혔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군대장관이자 주인인 보디발은 여주인을 희롱한 죄로 요셉을 다양한 방법으로 처벌할 수 있었습니다. 즉 요셉을 팔아버리거나, 자기 집안의 감옥에 가두어 굶어죽게 하거나 혹은 처형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디발은 이상하게도 요셉을 왕의 죄수를 가두는 왕의 감옥에 가둡니다(20). 왕의 감옥은 왕이나 나라에 큰 죄를 범한 사람을 파라오의 명령으로 가두는 감옥으로 왕의 명령으로만 가두고 또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보디발이 파라오의 군대장관(아마도 파라오의 친척)이었기에 왕이나 나라와는 관계가 없는 일개 노예에 불과한 요셉을 그곳에 가둘 수 있었던 것 같고, 이것은 보디발의 분노가 얼마나 큰 것인지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요셉은 왕이 조금의 관심도 가지지 않는 노예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실상 왕의 감옥에서 해방될 가능성은 조금도 없기 때문입니다. 겨우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인 요셉은 이제부터 늙어서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지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감옥에서 다른 죄수들이 노예이며 이방인인에 불과한 요셉을 어떻게 대했을지 생각해 본다면, 요셉의 상황은 가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럽고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것도 일시적이거나 혹은 풀려날 조금의 소망도 없이, 죽을 때까지 갇혀서 지속적인 고통을 당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러한 왕의 감옥에 갇힌 요셉에게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고 인자(자비, 은혜)를 더하셔서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셔서 간수장이 감옥에서의 이런저런 일들을 요셉에게 맡겼다(21, 22)고 말합니다. 감옥 안에서 죄수에게 시키는 일은 감옥안의 똥통을 비우거나 하는 등의 험한 일입니다. 간수장이 요셉에게 이런저런 일들을 맡긴 것은 다른 죄수들은 높은 관직에 있던 귀족들이며, 심지어 왕의 명령으로 풀려나 다시 관직에 오를 가능성도 있기에 간수장이 감옥 안에서의 험한 일들을 그들에게는 시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간수들도 하기 싫은 일이기에 노예이며 이방인이며 아무런 관직도 없는 요셉에게 맡기는 것이 적당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맥들을 생각해 보면,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결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과 인자를 더하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형제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 머나먼 이방땅으로 와서 노예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하게 행하던 중 억울한 누명을 쓰고 조금의 소망도 가질 수 없는 그런 감옥에 갇혀서 고통스럽게 생활하면서 감옥에서조차도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일들을 다 담당해야 하는 그런 처지가 어떻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증거이며 어떻게 하나님이 은혜를 더하신 상황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은 요셉이 그러한 상황과 처지에 처하고 감옥안에서 그러한 험한 일들을 하게 된 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이며 하나님이 인자를 더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본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간수장이 요셉의 손에 감옥 안의 제반 일들을 다 처리하도록 하고 요셉에게 맡긴 일들은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않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요셉이 자신에게 맡겨진 그러한 험한 일들조차도 성실하게 잘 감당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본문은 이것을 다시 한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며, 여호와께서 요셉을 범사에 형통(유익)하게 하셨기 때문“(23)이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감옥에 갇힌 요셉과 함께 하시며 요셉이 간수장에게 유익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본문의 설명은 다시 한번 과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여전히 요셉의 억울함을 해결되지도 않았고, 해결될 조금의 가능성도 없습니다. 여전히 요셉은 감옥을 벗어날 가능성이 조금도 없습니다. 여전히 요셉은 감옥 안에서 알려지지 않은 죄인으로 감옥 안의 이런저런 험한 일들을 한 평생 해야 할 처지입니다. 여전히 요셉이 감옥을 벗어 날은 요셉이 죽는 바로 그 날일 뿐입니다. 심지어 요셉이 나서서 무언가 놀라운 지혜나 능력을 발휘한 것도 아니며, 심지어 본문에서는 요셉이 하나님을 소망하거나 찬양하거나 예배하였다는 언급조차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은 그러한 요셉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은혜를 베푸셨고 형통(유익)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결국 본문은 이러한 요셉의 삶에 대한 언급과 평가를 통해, 본문을 읽는 우리들에게 이것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삶이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의 믿음의 삶에 어려움이나 억울함이 있고 해결될 조금의 가능성이나 희망이 없는 그러한 삶일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시며 인자를 더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의지하도록 촉구합니다. 우리의 억울함이 해결되는 것이나 고통스럽고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결과들 중의 하나이지만, 그것 자체가 하나님이 함께 한다거나 함께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을 결정하는 요소나 원인은 아닙니다. 또한 우리가 고통스러운 상황이나 억울한 상황에서 열심히 기도하거나 찬양하거나 많은 헌금을 하거나 교회일에 열심을 내는 것도 하나님이 함께 한다거나 함께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을 결정하는 원인이나 요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자신의 백성과 함께 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자신의 언약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하나님되심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다스리시는 결정적인 이유이며 원인입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언약의 상속자로 선택하셨다는 것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다스리시는 결정적인 이유이며 원인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러한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의지하며 언제나 어디서나 나를 언약의 상속자로 선택하셨기에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시다.

 

#창세기3920-23, #큐티, #독일, #뤼셀스하임, #프랑크푸르트, #마인츠, #비스바덴, #한인교회, #만나교회, #Genesis 39:20-23, QT, #Rüsselsheim, #Frankfurt, #Wiesbaden, #Maninz, #Korean_Church, #koreanische_kirchengemeinde, #MannaChurch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