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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4 년 7월 23일 화요일 큐티본문설명(창세기 40장 1-4절)2024-07-23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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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2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4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어제 본문에서 보디발의 노예였지만 그 집의 모든 것을 관리하던 중 요셉은 억울한 누명과 고발을 당하여 왕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감옥에서 살아가는 요셉을 통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형통하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후에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이를 통해 감옥에서 미래에 대한 소망없이 그저 주어진 일을 적절하게 잘 행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요셉의 삶이 어느 정도 계속된 것을 알게 됩니다. 창세기 41 46절에 보면 요셉이 이집트 파라오 앞에 설 때의 나이가 삼십세라는 것을 보면, 17세의 나이 때 노예로 팔려와서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지내고 이후 감옥에 갇혀서 지낸 기간은 전체 13년의 기간입니다. 이 기간의 각각의 상황에 따른 세부적인 기간은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앞뒤의 전체적인 문맥과 40 23술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다는 언급을 고려하여 생각하면, 아마도 보디발의 집에서 지낸 기간은 2-3년 정도, 감옥생활이 시작되어 오늘 본문의 그후에라는 표현까지의 기간은 4-5년의 시간인 듯 합니다. 이렇게 요셉은 여전히 노예이며 수감자로서 감옥 안에서 잊혀진 채로 몇년의 시간동안 살아가지만, 앞선 본문이 말하듯 하나님은 감옥 안에서의 요셉과 함께 하시며 그의 삶을 다스리십니다.

 

이제 오늘 본문은 전혀 뜬금없이 파라오의 왕궁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합니다. 즉 감옥에 갇혀 살아가는 이방인 노예에 불과한 요셉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관계가 있을 수도 없는 파라오의 왕궁에서의 일이지만, „감옥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요셉과의 접점을 있게 되는 일이 됩니다.

 

본문은 파라오의 술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그들의 주인 파라오에게 범죄하였다(1)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만, 그들의 범죄나 파라오의 왕궁에서의 사건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관심을 표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그들이 파라오의 술맡은 자와 떡 굽는 자인 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여 그들이 이방인 요셉으로서는 감히 쳐다볼 수도 없을 정도의 높은 관직의 귀족임을 드러냅니다. 당시 문화에서 왕의 술과 떡을 담당하는 직위는 왕이 가장 신임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관직으로 대부분의 경우는 왕의 친족들입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고관들이 파라오의 분노를 입어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감옥에 갇힙니다“(2-3). 본문은 바로 그곳이 요셉이 갇힌 곳이라고 언급하여 이러한 전개가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드러냅니다. 사실 고관들이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감옥인 왕의 감옥에 갇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언급을 통해 본문은 이방인 노예에 불과한 요셉이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감옥인 왕의 감옥에 갇힌 것이 이상한 일임을 은연중에 드러냅니다. 즉 이방인 노예에 불과한 요셉을 보디발이 즉각적으로 처형하거나, 노예로서 가장 극악한 환경이라고 하는 건축장이나 광산이나 배의 노 젖는 일 등을 하도록 팔거나 보내지 않고, 왕의 감옥에 가둔 것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왕의 감옥에서 한평생을 아무런 소망없이 천천히 죽어가도록 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지만, 놀랍게도 바로 그 왕의 감옥에서 이방인 노예인 요셉은 자신이 한평생 쳐다 볼 수조차도 없는 그러한 고관들과 만나게 되고, 심지어 그들을 수종들게 됩니다“(4). 특히 본문은 간수장(39:22,23)이 아니라, 친위대장(보디발)이 직접 요셉을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의 수종을 들게 하였다고 언급하여, 요셉이 왕의 감옥에 갇힌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드러냅니다. 아마도 친위대장의 입장에서는 술맡은 관원과 떡굽는 관원이 비록 왕의 분노로 감옥에 갇혔으나, 그들이 언제든지 복직할 수도 있었기에 그들을 단순히 수감자로 마구잡이로 대우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요셉은 그러한 친위대장의 명령으로 그들을 수종들며 섬기는데, „여러 날입니다(4). 요셉은 앞선 본문의 언급에서처럼, 고관인 그들을 감옥 안이라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적절하게 유익하게 잘 섬깁니다. 그러나 본문은 여러 날이라는 언급을 통해서, 그러한 요셉의 섬김에는 소망이나 특별한 다른 일들이 없었음을 드러냅니다. 더구나 요셉 뿐만 아니라 그들조차도 왕의 명령이 있기 전에는 끝없이 감옥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생각해 보면, 고관들인 그들이 감옥에 갇힌 상태였기에 그들이 일개 이방인 노예 수감자에 불과한 요셉을 어떻게 대하였을 것인지는 충분히 상상이 됩니다.

이와 같이 본문은 계속해서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여 감옥에 갇힌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인자를 더하셔서 비록 감옥 안이지만, 요셉이 형통(유익)하게 되어 감옥에 갇힌 높은 관직의 사람들을 섬기는 것과 함께, 그러한 소망없는 삶이 여러 날이었음을 드러냅니다. 이것은 곧장 본문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질문인 과연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라는 질문으로 우리를 이끌고 갑니다. 과연 그러한 요셉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비록 요셉 자신은 그 모든 일들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소망없는 삶 중에서도 감옥 안의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섬기는 삶을 살지만, 하나님께서는 전혀 관계없는 파라오의 왕궁의 사건을 통해 요셉과 고관들을 만나게 하시며, 요셉이 그들을 섬기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에도 하나님이나 믿음의 삶과는 전혀 관계없는 그러한 사건들과 만남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사건이나 만남을 통해서도 자신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며, 자신의 백성들을 다스리시며,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하십니다. 우리 삶의 이런 저런 상황이나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다스리신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며,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시며 다스리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되게 섬길 수 있게 됨을 깨닫고,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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