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백성이
그를 따라 올라와서 피리를 불며 크게 즐거워하므로 땅이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갈라질 듯하니 아도니야와 그와 함께 한 손님들이 먹기를 마칠 때에
다 들은지라 요압이 뿔나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어찌하여 성읍 중에서 소리가 요란하냐 말할 때에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오는지라 아도니야가
이르되 들어오라 너는 용사라 아름다운 소식을 가져오는도다 요나단이 아도니야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과연 우리 주 다윗 왕이 솔로몬을 왕으로 삼으셨나이다
왕께서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솔로몬과 함께 보내셨는데 그들 무리가 왕의 노새에 솔로몬을
태워다가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이 기혼에서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고 무리가 그 곳에서 올라오며 즐거워하므로 성읍이 진동하였나니 당신들에게 들린
소리가 이것이라 또 솔로몬도 왕좌에 앉아 있고 왕의 신하들도 와서 우리 주 다윗 왕에게 축복하여 이르기를 왕의 하나님이 솔로몬의 이름을 왕의 이름보다
더 아름답게 하시고 그의 왕위를 왕의 위보다 크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매 왕이 침상에서 몸을 굽히고 또한 이르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내 왕위에 앉을 자를 주사 내 눈으로 보게 하셨도다 하셨나이다 하니 아도니야와 함께 한 손님들이 다 놀라 일어나 각기
갈 길로 간지라 아도니야도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가서 제단 뿔을 잡으니 어떤 사람이 솔로몬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솔로몬 왕을 두려워하여
지금 제단 뿔을 잡고 말하기를 솔로몬 왕이 오늘 칼로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기를 원한다 하나이다 솔로몬이 이르되 그가 만일 선한
사람일진대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려니와 그에게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 하고 사람을 보내어 그를 제단에서 이끌어 내리니 그가
와서 솔로몬 왕께 절하매 솔로몬이 이르기를 네 집으로 가라 하였더라
오늘 본문은
어제 본문에 이어서 계속해서 솔로몬의 즉위장면과 그 결과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솔로몬의 즉위로 인해 백성들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예루살렘과 골짜기에 울려퍼지자 아도니야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인가 궁금해 할 때,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와서 솔로몬의 즉위 소식을 알려줍니다. 아도니야를 따르며 아도니야가
베푼 찬치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손님들은 그 소식을 듣자마다 놀라서 일어나 각기 제 갈길로 가버립니다. 즉
그들이 왕으로 인정하고 세우려고 한 아도니야를 버리고, 아도니야는 홀로 남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뜻과 욕망에 따라서 모였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뜻과 욕망이 채워지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교회공동체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뜻과 욕망을 따라서 모일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실제적으로 “교회”의 이름으로 모이지만, 사람들의 호기심과 유익, 서로 간의 교제와 만남이 목적이며, 심지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이익과 욕망을 위한 모임인
경우들도 자주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공동체는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1:6)입니다. 우리 만나교회 공동체가
사람의 뜻과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찬송하기 위하여 모일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나아가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올바르게 선포되며 실행될 때,
나아가 그러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주님의 백성들의 응답이 메아리칠 때, 사람의 뜻과
욕망을 위하여 모인 모임과 사람들은 놀라 뿔뿔이 흩어지며 진실되고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는 공동체와 사람들의 모임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 만나교회도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올바르게 선포되며 실행되고, 우리 성도들이 함께 기쁨으로 주님의 뜻에 응답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또한 본문은
함께 했던 사람들이 다 흩어지고 떠나갔을 때, 아도니야는 두려움에 빠졌고, 그러한 두려움 속에서 아도니야가 행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즉 아도니야는 율법에 기록된 것을
따라 제단의 뿔을 잡아 생명을 연장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도니야의 시도는 솔로몬이 지적한 것처럼
율법의 참된 의미를 따른 것이 아니라 외적인 형식만을 따르는 모습입니다. 출애굽기 21장 12-14절에 따르면, 사람을 죽인 경우에는 반드시
처형하도록 하였으나, 단지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 곳(제단, 도피성)으로 도망하면 처벌을 면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고의로 사람을 죽인 경우에는 그러한 곳(제단, 도피성)으로 도망하더라도 잡아내어 재판과정을 거쳐
처형하도록 했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도피성을 세 지파마다 한 곳씩 정하신 이유는 여호와의 성막/성전이 있는 곳까지 도망하는 것이 멀고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이러한 규정들은 당시에 있었던
피의 보복이라는 관습에 따라 실행할 때,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에 공정한 재판과 생명의 보호를 보장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아도니야는 이러한
율법의 규정을 알고 있었고 이 규정을 곡해하여 성막으로 도망하여 제단의 뿔을 잡아 처형을 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제단의 뿔을 잡는 것은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에 해당하는 규정이고, 더구나 “실수가
아니라 고의라면, 제단의 뿔을 잡았더라고 처형하도록 규정”합니다. 따라서
사실상 아도니야와 같은 반역의 경우에 이 율법규정은 관련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아도니야는 제단의 뿔을 잡고
솔로몬이 오늘 칼로 자신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51). 즉 아도니야는 지금 당장
있게 될 솔로몬의 보복을 피하는 방법으로 제단의 뿔을 잡았을 뿐입니다. 외형적으로 아도니야는 제단의 뿔을
잡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호소하는 듯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도니야는 제단의 뿔을 잡음으로 인해 성막 내에서 피비린내 나는 복수의 칼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고,
나아가 어쩔수 없이 솔로몬이 칼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늘 칼로 자신을 죽이지 않겠다는 확답을 얻고자 할 뿐입니다.
“오늘”이라는 표현으로 아도니야의 마음 속에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이
다 떠나간 이 위급한 상황과 순간을 벗어나면 또다시 세력을 모아서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의도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율법의 참된 의미를 알고 따릅니다. 솔로몬은 “만약 그가 선한 사람이라면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어 떨어지지 않을 것이지만, 그에게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52)고 말하고, 아도니야를 제단에서 끌어 내렸으나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심지어 솔로몬은 당시의 주변 왕국들과 같이 반역죄를 범한 아도니야를 처형할 권리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러한 세상적인 권리와
능력을 행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솔로몬은 “그에게 악한 것이 보이면 그가 죽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즉 “내가 그를 죽일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으며, “나에게 반역하면,
나의 말을 거스리면”이 아니라, “그가 선하면, 그가 악하면”이라고 말하여, 그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향한 태도와 마음을 언급합니다.
이와같이 오늘날에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사용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의
참된 의미를 알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그것을 무시하고 왜곡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목적과 이익과 욕망과 뜻을 이루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면,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우리 만나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참된 의미를 진실되게 믿고 따를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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