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년 9월 2일 월요일 큐티본문설명(창세기 49장 1-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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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4 년 9월 2일 월요일 큐티본문설명(창세기 49장 1-15절)2024-09-0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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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2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13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14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15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지난 토요일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들로 삼고, 그들을 축복하되, 둘째인 에브라임에게 오른 손을 얹고, 첫째인 므낫세에게 왼손을 얹어 축복한 것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복은 오직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성취된다(9:10-13)는 원리를 생각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부터는 야곱이 자기 아들들을 불러 남긴 마지막 말들입니다. 흔히 유언으로 칭해지는데, 야곱은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말하겠다“(1)고 표현하여 단순히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남기는 유언을 넘어서 예언적 선언임을 드러냅니다.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예언적 선언이라고 하지만, 그 모든 내용들의 세세한 부분들까지 예언적 선언은 결코 아닙니다. 즉 여기에는 야곱의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들이 함께 포함되어 있기에, 예언적 선언의 부분과 그러한 야곱의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을 구별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이 부분은 문학적으로는 로 구성되어 있기에 더 그러합니다. 따라서 표현 하나하나를 성경의 내용들과 연결해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예언적 선언이라고 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그 아들들과 각 지파에서 그것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성취되었는지, 혹은 그렇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정확하고 분명하게 알 수 없습니다. 즉 이후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서 그 예언적 선언의 성취/불성취를 세세하게 확인하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어쨌든, 오늘 본문에서 야곱은 출생의 순서대로 아들들을 언급하는데,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의 경우에는 복이 아니라 저주에 가까운 언급들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어느 정도 그 근거가 분명한 것으로 르우벤은 창 35:22에 언급된 아버지의 첩 빌하와의 동침한 사건이고, 시므온과 레위는 창 34에 기록된 디나로 인해 세겜성을 습격한 사건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야곱은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의 분명한 죄악을 지적합니다.

 

이와 달리 오늘 본문에서 유다에 대한 언급은 놀라울 정도로 특별한 내용들이며 심지어 예언적 선언으로 가득합니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를 찬양한다인데, 야곱은 이 이름을 그 형제들의 찬송이 될 것(8)이며 사자새끼, 수사자와 암사자와 같을 것(9)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사실상 유다 지파의 다윗과 솔로몬 왕에게서 성취되었는데, 다윗과 솔로몬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는 왕이 되어 가장 강력한 나라를 이루었고 이스라엘 민족의 원수로 알려진 주변의 가나안 족속들인 블레셋, 모압, 암몬 등을 복속시켰습니다. 사무엘하 22 41절에서 다윗은 주께서 내 원수들의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내게 나를 미워하는 자를 끊어버리게 하셨다고 찬양하는데, 우리 번역의 원수들의 은 원수들의 (덜미)“를 가리킵니다. 또한 야곱은 절대적 권위를 상징하는 “, 즉 통치자의 지팡이가 유다와 그 후손에게 계속해서 주어질 것을 예언하는데(10), 이것은 다윗 이후 사실상 이스라엘의 정당한 통치권력은 언제나 유다지파, 다윗 왕가에게 속해 있을 것임을 드러냅니다(cf. 33:7). 그러나 이러한 유다지파의 통치는 실로가 오기까지라고 야곱은 예언합니다. 사실 여기에서 언급된 실로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흔히 실로는 메시야, 혹은 메시야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시대로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11절의 언급들이 메시야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종말 이후의 시점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11절은 풍성한 포도수확의 시기를 가리킵니다. „그는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의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입니다. 왜냐하면 포도원에서 수확하기 위해서 입니다. 또한 그 포도원의 수확은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 수 있는놀라운 기적과 같은 풍성한 수확일 것입니다. 그러한 풍성한 수확으로 인해 그는 포도주/즙를 마음껏 먹고 마셔서 마치 그 옷에 포도주/즙이 흘러내려 완전히 물들인 것과 같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11절은 메시야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미래적인 종말 이후의 시점입니다. 흔히 포도주/즙이 붉은 빛을 띄는 것에 착안하여 이 구절이 메시야의 고난과 죽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려고도 합니다.

 

이렇게 유다에 대한 야곱의 예언적 선언은 유다의 후손/지파에서 참 메시야와 메시야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실로가 오실 것임을 알립니다.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그 이유입니다. 왜 유다의 후손/지파를 통해 메시야가 오며, 메시야의 통치가 이루어지는가? 입니다. 간결하게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유다가 동생 베냐민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았기 때문입니다(43:9; 44:32,34). 이러한 유다의 모습은 장차 오실 메시야와 그가 하실 일에 대하여 미리 알려주는 모형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예언의 약속을 따라 유다지파에서 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내어주시고 담보물이 되어주신 것(7:8-10; 7:22; 요일3:16)알고 믿으며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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