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22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23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26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어제 본문에서
야곱의 죽음이후 진행된 장례절차와 과정을 통해 그 모든 과정이 사실상 막벨라 굴에 대한 아브라함의 집안의 소유권을 인정받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버지 야곱의 장례 이후, 남은 야곱의 아들들이 자신들이 과거에 행한 범죄로
인해 요셉이 자신들을 미워하고 보복할 것을 염려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15).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것은 오래전의 일입니다. 아버지 야곱과 함께 이집트로 내려와 좋은 땅에서 거주한지
17년이 지난 상황입니다. 그들이 요셉을 팔았던 때로부터 생각하면,
거의 40년이 지난 때입니다. 17년의 세월동안
요셉과의 관계가 평화롭게 지내왔고, 요셉으로 인해 풍요롭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왔지만, 여전히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죄의 기억이 남아있고 그로 인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자신을 포함하여 세상의 어떤 것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두려움에
빠진 형제들은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미 죽은 그들의 아버지 야곱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16,17). 여기에서 먼저 그들은 야곱을 „당신(요셉)의 아버지“라고 칭하며, 그들은 스스로를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표현하여 마치 용서하지 않는다면, 아버지와 하나님께 범죄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아버지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요셉을 속이고자 합니다.
나아가 그들은
누군가를 시켜서 요셉에게 먼저 이 말을 전하고, 말을 전해 들은 요셉의 반응(울었더라 17c)을 살피고 그 후에 찾아와 엎드려 „우리는
당신의 종들입니다“라고 말합니다(18). 이러한 일의 진행과정은 형들이
얼마나 큰 두려움 속에 있었는지를 알려주면서 17년 전 요셉이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고“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으니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45:5,7,8)는 말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비록 거의 100세에 가까운 나이로 죽음을 앞둔 형들이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죄와 보복과 죽음의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또다시 속이고자
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형들의
모습에 대하여 요셉이 보인 반응은 „울고“(17c) „간곡한 말로 위로한 것“(21)입니다. 요셉의 첫 말이
„두려워하지 마소서“(19)인 것과 우리 번역의 „위로“라는 말의 원래 의미가 „한숨쉬다“는 의미에서 „후회하다“(창6:6), „뉘우치다 마음을 바꾸다“(출6:6), „돌이키다“(시106:45), „동정하다 불쌍히 여기다“(삿2:18),
„위로하다“(창5:29; 시119:52)
등인 것을 볼 때, 죄책과 보복과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또다시 속이고자 하는 어리석은 모습의 형들의 모습에 요셉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러한 죄책과
보복과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참고1 나함).
이렇게 요셉이
형들을 위로한 것은 „간곡한 말“을 통해서인데, 그 내용은 „두려워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서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고, 당신들은 두려워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19-21)입니다. 즉 여기에서 요셉은 자신의 인생을 통해 함께 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을 다시
한번 드러내며 이를 통해 형들이 죄책과 보복과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위로를 얻게 합니다. 달리 말하면,
요셉은 자기자신의 말과 방법, 지혜와 지위를 가지고 형들에게 약속하거나 보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함께 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며, 형들
또한 그러한 하나님의 바라보며 의지하도록 합니다.
이와 같이 죄와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우리 인생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의지하며 그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셉의 믿음의 고백이 오늘 우리들의 믿음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하여 기도합시다.
참고1 히브리어의 근원인 아카드어에서 이 말은 살아있는 동물이 숨을 크게 내쉬는 소리를 의미하는데, 죽어가면서 숨이 멈추는 듯 할 때, 그 숨통을 틔워주어 숨을 돌리게 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은 죄와 죽음, 낙심과 절망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내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경에서는
이 단어를 파라칼레오(창50:21)로 번역하는데, 파라칼레오의 의미는 „옆에서 부르다“로 어떤 일로 얼굴을
돌려버린 자를 다시 옆에서 불러 얼굴을 원래대로 돌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파라칼레오라는 동사가 명사로는
파라클레이토스인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리“(요14:16)에서 „보혜사“로 번역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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