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이제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이 모세의 모든 율법이 아니라,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는 것을 결정합니다. 이것은 당시 이방인들의 가치관(우상숭배, 점술, 자유로운
성관계)을 따르지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세상의
가치관이 아닌 참된 복음의 가치관을 따라 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이제 마지막으로 야고보가
일어나서 마지막으로 정리하며 권고합니다. 우선 이 야고보는 세베대의 아들이며 요한의 형제인 사도 야고보가
아니라(행12:2; 마4:21),
예수의 형제 야고보로 생각됩니다(행 12: 마 13:55;갈1:19 아래 참고).
야고보는 먼저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기 위하여 그들을 돌보셨다”는 것을 시므온(베드로)가
보고하였다고 요약합니다. “처음으로”로 번역된 것은 “이전에” “앞서”라는 의미로, 역사적 처음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또한 “돌보신 것”으로 번역된 것은 “방문하였다”는 의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방문하신 목적이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번역에 “자기 이름을 위할”이라고
된 것은 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할 것이라는 뉘앙스이지만, 직역하면 “자기 이름을 위하여”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이 이방인 중에 하나님의 백성을 취하는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것이라는 입니다.
달리 말하면, “자기 이름을 위하여”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소유로”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야고보의 언급은 사실상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던 문구를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신7:6,7). 나아가 야고보는 이것이 예언자들의 말과 일치한다고
선언합니다(행15:15-18; 슥2:11; 암9:11-12). 이렇게 야고보는 이방인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부르심을 확인하면서, 그렇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방인들과 율법에 대한
안디옥교회의 질문과 관련하여 중요한 제안을 합니다. 그것은 이방인 중에 예수님을 믿은 이들은 우상의
더러운 것, 음행, 목매어 죽인 것, 피를 멀리하는 것만을 지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방인들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필수적인 것들입니다. 달리 말하면,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들은 그 삶의 방향과 방식, 가치관이 바뀌어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복음의 가치관과 방식에 순종해야 함을 결정하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전합니다. 우리 만나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이 아니라, 참된 복음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참고: 신약성경에 언급된 세 명의 야고보 신약성경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야고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세 명이다. 첫째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인데, 동생 요한과 함께 예수의 열두 제자들 중의 하나로 부름을 받았고 사도행전
12장2절에서 헤롯 안티파스에 의해 일찍 순교한 것으로 여겨진다. 큰 야고보라고 칭해지기도 한다. 둘째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흔히 작은 야고보라고 칭해지는 예수의 열두 제자중의 하나이다(마10:3;
행1:13). 셋째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이다(마13:55; 막6:3).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고전15:7), 사도행전1장의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있다(1:13-14 예수의 아우들). 사도행전 12장17절에서
감옥에서 나와 마가요한의 집에 잠시 들런 베드로가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고 언급하며, 15장
예루살렘 회의에서 마지막 결론을 내린 사람이고 행21장18절에서 3차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온 바울을 맞이한 사람이다(갈1:19; 2:12). 요세푸스는 예수의 형제 의인 야고보가 율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대제사장 아나노스에 의해
순교했다(62)고 기록한다. 이 세 번째 야고보의 경우는
두 번째인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동일 인물로도 여기는 이들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예수의 형제라는
표현을 예수의 사촌형제로 여긴다(로마 카톨릭 입장). 흔히
야고보서를 기록한 것으로 이해되는데, 아닐 가능성도 있다. #사도행전15장 12-21절, #큐티, #예루살렘교회회의, #야고보_제안, #만나교회,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인교회, #장로교, #고신, #Acts_of_Apos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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