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성령께서는 바울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며 환상으로 마게도냐(그리스)로 부르십니다.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이 부르신 줄로 인정하며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씁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할 수 있도록 힘쓰는 하루가 되도록 합시다..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여기에서의 아시아는
요한계시록에서 언급된 일곱 교회가 있던 지역과 에베소와 밀레도 등 에게해 남쪽해안지역을 포함하는 로마의 속주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성령님께서 이렇게 하시자, 바울과 일행은 좀더 남서쪽으로 내려가
지중해의 해안지역인 브루기아(루기아) 속주를 거쳐 다시 북동쪽으로
길게 뻗은 갈라디아 속주의 터키 중앙고원을 거쳐,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에게해의 북쪽 끝에 있는
드로아와 버가모 등을 포함하는 무시아 속주를 거친 후, 북서쪽에 있는 흑해연안의 비잔티움(이스탄불)을 포함하는 비두니아 속주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무시아
속주를 통과하여 에게해 북쪽 항구인 드로아로 내려갑니다. 따지고 보면, 바울은
오늘날의 터키 서쪽 절반을 동서남북으로 계속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셈이 됩니다. 상당한 시간과 또한
재정이 들었을 것이며 더 나아가, 계속해서 걸어다녀야 했던 바울과 그 일행의 피곤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더 큰 어려움은 성령께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그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어디를 가던지 복음을 전파하며 말씀을 가르치던 바울이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으시며, 길을 막으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몹시 당황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의 곳곳에서 보듯, 성령님께서
직접적으로 말씀을 통해 어디로 가라고 하실 수 있지만,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바울과 일행은 복음을 전해야 할 곳을 찾아 이리저리 다니며 “애를
씁니다.” “애를 썼다”는 이 표현은 “시험하다, 시도하다, 인내하다, 훈련하다, 자세히 조사하다, 유혹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처럼 계속적으로 애를 썼다는 이 표현
속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간구하며 또한 시도하며 인내하는 그런 다양한 의미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토록
열정적으로 가는 곳곳 마다 복음을 전하던 바울이었기에 무척이나 답답하였을 것 같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드로아로 바울 일행은 내려갑니다. 추측하면, 드로아는 바울의 고향인 다소와 안디옥으로 가는 배편이
자주 있는 항구요지입니다. 아마도 바울 일행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안디옥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왜냐하면 어제 묵상한 본문에서처럼,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두 가지 목적은 첫째, 1차전도여행때 갔던 곳-수리아, 길리기아, 밤빌리아, 갈라디아 등을 되돌아 다니며 교회를 견고하게 하는 것과 둘째 1차
전도여행길에서 좀더 나아가 아시아 부르기아 비두니아 등으로 복음전파를 지역적으로 좀더 확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이러한 바울의 생각과 계획의 전반부를 허락하셨으나 후반부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심지어 말씀을 전하는 것조차도 막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일행은 2차전도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가려고
드로아에 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성령님께서는
환상을 통해 바울과 그 일행을 전혀 계획하지 않았고 예상치 않았던 마게도냐 지역으로 인도하십니다. 10절은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즉시,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과 달리 당시에 여행은 오랜 기간이 걸렸고, 많은 비용이 들었고,
긴간이 오래될수록 건강과 안전의 문제가 많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마게도냐(그리스)는 지금까지 바울과 일행이 다녔던 지역과는 전혀 다른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뿐만 아니라 일행(우리)은 환상을 보자마자 즉시 마게도냐도 떠나기를 힘씁니다. 이것은 모든
조건들과 계획들을 넘어서,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며 하나님의 뜻임을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우리들이 계획하고 준비한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대신 그런 모든 계획과 조건들을 넘어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뜻임을 인정한다면,
우리들은 우리들의 계획들과 조건들을 넘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명히
이러한 순종은 많이 힘들고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만나교회와 성도들이 그러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며 격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16장 6-10절, #큐티, #바울의_2차전도여행, #마게도냐로의_부르심, #순종하는_삶, #만나교회,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인교회, #장로교, #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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