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바울은 장로(목사)들에게 주어진 감독자와 교회를 보살피는 임무를 말하면서, 이후 에베소 교회에 있게 될 여러 가지 어려움들 중에도 훈계를 기억하라고 촉구합니다. 나아가 주와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여 그 말씀이 교회를 든든히 세워 기업이 있게 하실 것을 소망합니다. 우리들도 주와 은혜의 말씀으로 든든히 세워지며 기업이 있도록 기도합시다.
어제 본문에 이어서 바울은
계속해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말을 이어가는데, 성령께서 알려주신 바울 자신의 환난과 결박을 언급하면서, 너희가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할 것임을 알립니다. 즉 지금의
이 만남과 대화가 마지막 만남과 대화이며 영원한 이별의 만남이며 유언임을 말합니다. 이러한 마지막 유언에서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교회를 보살피는 감독자라는 역할과 임무를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자기를 위하여” 그리고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고
명합니다. 우리 번역에 “위하여”로 번역된 것은 “에 대하여”라는
의미로 교회를 보살피는 감독자로서 장로들은 그 교회에 속한 성도들 뿐만 아니라 자기자신에 대해서도 살펴야 하는데,
왜냐하면 장로 자신도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장로들에게 주어진 역할과 임무는 성도들과 장로들 자신들이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에 속한 자로 합당한지를
확인하고 보살피는 일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16절에 따르면,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고 말는데, 이
말씀에 따르면, 장로들에게 주어진 일은 “가르침”이 하나님이 피로 사신 교회에 합당한지를 살피며, 또한 자기자신들과
성도들이 그런 합당한 가르침에 순종하는지를 살피며 보살피는 일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역할과 임무가
중요한 이유를 29-30절에서 밖과 안의 두 가지 일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즉 밖으로부터 사나운 이리가 들어와 양떼를 아끼지 않고, 또한 장로들
중에서도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교회 공동체 밖으로부터 들어오거나
공동체 안에서 있는 거짓된 선지자들/거짓된 교사들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떠난 후 에베소 교회에 이러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딤전4:1-4; 6:3-5; 딤후 3:1-9; 계 2:1-7). 특히 놀라운 것은 바울의 이러한 마지막 권면을 받는 당사자들인 장로들 중에도 그러한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31-32절에서 두 가지에 호소합니다. 첫째는 에베소에서 바울 자신이
삼년이나 밤낮으로 눈물로 훈계한 것을 기억하라고 호소합니다. 여기에서 “훈계한 것”은 “책망하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삼년간이나 두란노서원에서 말씀을
가르친 일을 의미하면서, 특별히 “책망하다”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아마도 복음을 받은 후 말씀의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에베소 성도들은 그들이 믿음을 가지기 이전의 여러 가지 습관이나 주장 등을 쉽게 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1절에서 바울은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고 말하며, 디모데후서 6장 3-5절에서
특히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을 언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3년간이나 그들을 책망한 것을 기억하라고 호소합니다.
둘째는 바울은 “주님과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합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이 여러분을
든든히 세우셔서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님과 주님의 말씀이 현재적으로 교회 성도들과 장로들을 든든히 세우며 나아가 미래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자리를 얻도록 하십니다.
이처럼, 교회 공동체, 즉 성도들과 직분자들을 하나님이 피로 사신 교회에
합당하게 만들며 든든히 세우는 것은 주님과 주님의 은혜의 말씀입니다. 주님과 주님의 말씀이 든든히 세우셔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기업을 얻는 우리 만나교회와 성도들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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