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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4 년 7월 24일 수요일 큐티본문설명(창세기 40장 5-15절)2024-07-2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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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9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12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13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14 당신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어제 본문에서 감옥에 갇혀 소망없는 삶 중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형통(유익)하게 하는 삶을 살던 노예 요셉은 왕의 분노로 감옥에 갇힌 고관들을 수종들며 섬기는 일을 여러 날 동안 하였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감옥에서의 소망없는 삶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형통(유익)하게 되어 고관들을 섬기는 삶을 여러 날 동안 하던 중 어느 날 고관들이 동일하게 하룻밤에 서로 내용이 다른 꿈을 꾸었다는 언급으로 시작합니다(5). 다른 여느 날과 동일하게 아침에 요셉은 고관들을 섬기기 위해 그들의 감옥에 들어갔는데, 그날은 그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는 것을 봅니다(6). 생각해 보면, 감옥에 갇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고관들의 입장에서는 근심의 빛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날 그들의 얼굴에 있는 근심의 빛이 다른 날과는 다른 것을 요셉을 보고 그들에게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7)라고 질문합니다. 이러한 요셉의 질문은 어떻게 보면, 황당합니다. 왜냐하면 본문이 말하듯, „그 주인의 집에 함께 갇힌 상황이며 심지어 요셉은 일개 이방인 노예에 불과하며, 심지어 요셉 자신의 앞날에 대한 근심으로 스스로 가득했을 것이며, 또한 고관들의 근심을 듣는다고 하더라고 요셉이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가능성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다른 특별한 의미를 가지기 보다는, 아마도 요셉은 그들을 수종들며 섬기는 입장에서 혹시라고 그들의 감옥생활에 불편함이 있는지를 알고자 하는 것이며, 이 경우에 아마도 요셉은 그러한 불편함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듯 합니다. 왜냐하면 그 주인이 그들을 섬기도록 요셉에게 임무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요셉의 요청을 들은 고관들은 자신들이 근심하는 이유를 밝히는데, 그것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8). 사실 감옥에 갇힌 그들의 꿈을 해석하기 위해서 지혜자나 술사들, 혹은 꿈해석가들을 감옥으로 불러오는 것은 고관들이나 요셉이나 결코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말하면서 그들에게 그들의 꿈을 자신에게 말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여기에서 요셉은 자신이 그 꿈을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요셉에게는 전혀 그러한 지혜자나 술사들, 혹은 꿈해석가들과 같은 그러한 모습은 없었습니다. 비록 이전에 요셉이 꿈을 꾸었지만, 정작 요셉 자신은 그 꿈을 전혀 해석하지도 않았고, 하나님께서도 요셉에게 그 꿈을 해석하는 지혜를 주시거나 그 꿈을 해석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요셉은 꿈의 해석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고관들 앞에서도 분명히 드러냅니다.

 

한가지 더 생각할 것은 이러한 요셉의 확신은 하나님이 요셉 자신에게 그 꿈의 해석을 알려주실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요셉은 하나님이 나에게 그 해석을 알려주신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즉 요셉은 철저하게 그 꿈의 해석에서 자신을 배제하며, 하나님을 전면에 내세워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두 고관들이나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러한 해석을 전달하기 위한 방편으로 어떤 자들은 황홀경에 빠지거나 신접하거나, 혹은 옛 지혜를 의지하며 종교적 의식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러한 것들과는 전혀 관계없기에 단지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확신을 상황이나 형편에 따라 변경하지 않고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특히 이집트와 같은 나라에서 고관들 앞에서 계속해서 그러한 확신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데, 요셉은 심지어 파라오 왕의 앞에서도 동일한 확신을 견지합니다(41:16).

 

본문은 요셉이 그러한 꿈을 어떻게 해석하게 하게 되는지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조차도 하지 않고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요셉은 고관들의 꿈의 내용을 듣자마자 아무런 다른 행동이나 생각이나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 즉시 그 꿈에 대한 해석을 말합니다(40:12).  요셉이 고관들의 꿈의 내용을 듣자마자 그의 머리 속에 그 꿈의 내용의 의미가 이해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고, 이것은 결국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는 요셉의 고백처럼, 하나님께서 그 꿈의 의미를 요셉의 머리 속에 이해되게 하신 것이라고 우리는 이해하게 됩니다.

 

요셉은 이렇게 고관의 꿈을 해석하면서,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호소합니다: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파라오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14-15). 이처럼 요셉은 성실하고 신실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나 지혜를 내세우지도 않으며,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으로 행하며 지혜롭게 행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도 이와 같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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