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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4 년 7월 26일 금요일 큐티본문설명(창세기 41장 1-8절)2024-07-26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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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2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3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4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 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5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6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7 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 8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어제 본문에서 왕의 감옥에서 술맡은 관원과 빵굽는 관원의 꿈들을 해석하고 그 해석대로 일들이 진행된다면, 요셉은 은혜를 베풀어서 파라오에게 자신의 처지를 말하여 건져주기를 호소합니다. 그러나 요셉의 해석대로 원래 관직을 되찾은 술맡은 관원은 요셉을 기억하지 않고 잊어버렸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만 이년 후라는 언급으로 시작합니다. 즉 만 이년 동안이나 요셉은 계속해서 이전과 동일하게 감옥생활을 합니다. 이 언급과 41:46절에 따르면, 17세에 노예로 끌려온 요셉이 27세 정도에 감옥에서 관원들의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앞선 본문이 말하듯, 여전히 요셉은 잊혀진 사람에 불과합니다. 요셉은 자기 형들에게서 잊혀졌고, 자기 아버지에게서 잊혀졌고, 자기 주인 보디발에게서 잊혀졌고, 술맡은 관원에게서도 잊혀졌습니다. 이렇게 잊혀진 사람 요셉의 감옥 안에서의 삶과 생각은 어떠했을까요? 요셉은 계속해서 자신이 가졌던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라는 그 확신을 유지하고 있을까? 요셉은 계속해서 소망의 불씨를 간직하고 있을까요? 심지어 만 2년의 시간동안 본문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였다는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술맡은 관원은 그를 잊었지만,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다 라는 식의 언급이 있을만도 한데, 본문은 침묵합니다. 이렇게 요셉은 완전히 잊혀진 사람이 되었고, 본문의 이러한 흐름은 하나님도 요셉을 잊었을까라는 질문을 우리 앞에 던집니다.

 

본문은 그렇게 요셉이 잊혀진 후 만 이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파라오가 꿈을 꾸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사실 왕궁에서 꿈을 꾼 파라오와 감옥 안의 잊혀진 요셉은 세상적으로 생각하면 전혀 접점이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파라오에게 요셉은 잊혀진 사람을 넘어서 처음부터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파라오가 꾼 꿈을 매개로 왕궁의 파라오와 감옥의 요셉의 접점이 만들어집니다. 왜냐하면 파라오가 꾼 그 꿈을 해석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꿈을 꾼 파라오는 이집트의 점술가들과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 해석과 의미를 질문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고백하듯 해석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요셉이 파라오의 꿈들을 해석하고 나아가 그 꿈들이 현실화되는 과정자체는 파라오의 꿈과 그에 대한 요셉의 해석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드러냅니다.

 

생각해 보면, 이전에 이집트의 점술가들과 현인들은 이런저런 꿈들에 대한 이런저런 해석들을 해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미래에 대한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 속해 있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어진 꿈들만이 그러한 미래에 대한 참된 의미를 담지 합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꿈들에 대한 해석도 하나님에게만 속해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이집트의 점술가들과 현인들이 이전에 해석해 왔던 이런저런 꿈들은 모두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 아님을 드러내며, 그들의 해석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만약 그러한 꿈들이 하나님께 속해 있고, 그들의 해석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도 동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이러한 내용은 앞서 요셉 자신이 꾼 꿈들과 그에 대한 형제들과 아버지 야곱의 해석-곡식단의 꿈과 해와 달과 열한 별의 꿈(37:5-11)- 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요셉이 꿈을 꾸고 형제들과 아버지에게 말한 이후, 거의 20년 후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곡식을 사러 내려온 형들을 보면서 요셉이 그들에 대하여 꾼 꿈을 생각(기억)하였다“(42:9)고 유일하게 한번만 지나가듯 언급되는 것을 볼 때도 드러납니다. 즉 요셉은 단지 자신이 그들에 대하여 꾼 꿈을 생각했을 뿐, 그 꿈에 대한 해석을 덧붙이지 않습니다. 실제적으로 요셉이 꾼 그 꿈들은 요셉 자신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으며, 의미를 가지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오늘 본문의 갑작스러운 진행과정은 잊혀 진 요셉과 전혀 관계없는 파라오의 꿈과 파라오의 궁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은 심지어 요셉도 포함하여 세상의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할 만큼 조용하며 드러나지 않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과 세상의 사람들 모두를 유익되게 일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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