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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4 년 7월 27일 토요일 큐티본문설명(창세기 41장 9-16절)2024-07-27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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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10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11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뜻이 있는 꿈이라 12 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13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 14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15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어제 본문에서 감옥에서 잊혀 진 요셉과 전혀 관계없는 파라오가 꿈을 꾸고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번민한 상황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한 파라오의 꿈과 그것을 해석할 자가 없는 왕궁에서의 상황이 감옥에서 잊혀 진 요셉과 연결되는 장면입니다. 바로 눈 앞에서 벌어지는 파라오의 꿈과 그에 대한 해석의 문제로 떠들썩한 왕궁의 상황으로 술맡은 관원장은 이미 잊어버렸던 자신이 죄를 지어 감옥에 있을 때의 그 일을 기억하고 파라오에게 소상하게 알립니다(9-13). 술맡은 관원장은 자신과 떡 굽는 관원장이 죄를 지어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꿈을 꾸었을 때, 그 감옥에 있던 친위대장의 종된 히브리 청년이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였고 그 해석대로 되었다고 상세하게 알립니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술 맡은 관원장의 행동과 말은 술 맡은 관원장으로서는 큰 위험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이집트의 이름난 점술가들과 현인들이 그 꿈에 대한 해석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개 노예이며 감옥에 갇혀 있는 히브리 청년에게서 어떠한 지혜나 신적인 능력이나 마술적 능력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오히려 파라오를 놀린다고 여겨질지도 모르며, 나아가 요셉이 해석을 할 수 있을지 없을 지도 모르며, 심지어 현재 요셉이 감옥에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왕국의 둘째 권력자인 친위대장의 종으로 죄를 범한 노예에 불과하기 때문에, 친위대장이 어떻게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술 맡은 관원장은 감옥에서 있었던 사실만 그대로 말할 뿐, 요셉이 해석을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놀랍게도 파라오는 그러한 술 맡은 관원장의 진술을 듣고 그 즉시 요셉을 부릅니다. 수년간 감옥에 갇혀 있었기에 남루한 모습이었기에 파라오의 신하들은 요셉의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 입히고 파라오 앞에 들어가게 합니다(14). 억울한 누명을 쓰고 친위대장에 의해 왕의 감옥에 들어간지 수년만에, 전혀 예상치 못하게 파라오의 명령으로 왕의 감옥을 벗어나 파라오의 왕궁으로 들어갑니다. 이 순간 요셉이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 어떤 마음과 감정이었는지 본문은 전혀 언급하지 않지만, 아마도 단지 어리둥절하였을 뿐이라 여겨집니다. 심지어 무슨 일인지도 알지 못했을 것인데, 하나님께서도 침묵하십니다.

 

본문은 곧장 파라오와 그 앞에 선 요셉의 대화로 넘어갑니다. 파라오는 먼저 자신이 꿈을 꾸었지만, 아무도 해석하는 자가 없는 상황을 알립니다. 이어서 파라오는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해석한다)“고 들었다고 말합니다. 마치 요셉이 어떠한 꿈이라도 들으면 해석하는 능력과 지혜가 있는 듯 말합니다. 그러나 거의 삼십살에 이르는 삶 동안 요셉이 꿈을 해석한 것은 오직 한 번 술맡은 관원장과 떡굽는 관원장의 꿈들에 대한 것뿐입니다. 그렇기에 요셉으로서는 꿈을 들으면 해석한다라고 말할 만큼의 경험이나 지혜나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이전에도 요셉이 말하였듯, 해석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요셉은 이것은 다시 한번 분명히 하면서,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파라오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실 것이라고 답합니다(16). 이러한 요셉의 응답은 파라오의 기대를 깨뜨리는 대답이며 불확실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해석은 요셉 자신에게 있지 않기 때문에, 요셉 자신은 파라오에게 해석의 확실성을 보증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신다면하나님께서 평안히 파라오에게 답하실 것이라고 요셉은 답합니다. 이것은 만약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다면답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이제 막 감옥에서 수년만에 겨우 나온 히브리 노예이며 20대의 요셉으로서는 파라오의 왕궁에서 파라오에게 답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앞서 요셉이 보여준 것처럼, 해석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을 요셉은 파라오의 왕궁에서 파라오 앞에서 드러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있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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