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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4 년 7월 29일 월요일 큐티본문설명(창세기 41장 17-36절) 2024-07-30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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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꿈에 나일 강 가에 서서 18 보니 살지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19 그 뒤에 또 약하고 심히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올라오니 그 같이 흉한 것들은 애굽 땅에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 20 그 파리하고 흉한 소가 처음의 일곱 살진 소를 먹었으며 21 먹었으나 먹은 듯 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흉하더라 내가 곧 깨었다가 22 다시 꿈에 보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23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더니 24 그 가는 이삭이 좋은 일곱 이삭을 삼키더라 내가 그 꿈을 점술가에게 말하였으나 그것을 내게 풀이해 주는 자가 없느니라 25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26 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라 27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한 일곱 소는 칠 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 28 내가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29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30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그 기근으로 망하리니 31 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 32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33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34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나라 안에 감독관들을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35 그들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읍에 쌓아 두게 하소서 36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

 

지난 토요일 본문에서 왕의 감옥에서 소망없이 잊혀진 삶을 살던 요셉이 전혀 관계없는 파라오의 꿈과 그것을 해석할 자가 없는 왕궁의 상황으로 인해 드디어 왕의 감옥에서 벗어나 파라오 앞에 나아간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파라오의 꿈에 대하여 대답하실 것이라는 요셉의 말에 따라 파라오가 자신의 꿈의 내용을 말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파라오는 두 가지 꿈을 꾸는데, 첫째 꿈은 살진 일곱 암소를 약하고 흉한 일곱 암소가 먹는 것에 대한 것이고(17-21), 두번째 꿈은 충실한 일곱 이삭을 마르고 가는 일곱 이삭이 삼키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22-24). 파라오는 자신의 이러한 꿈들에 대하여 점술가들(마술사들, 점술가들)에게 말하였으나 아무도 그것을 풀이해 주는 자가 없었다“(24)고 말합니다. 우리 번역의 풀이하다“(나가드)는 말은 정면에 두다는 의미로 입증하다“ „알리다“ „보여주다“ „예언하다“ „설명하다는 의미로 16절에서 사용된 해석“/“푼다“(파타르 열다, 해석하다)와는 다른 단어입니다. 즉 어떤 의미에서 파라오는 요셉에게 그 꿈의 의미에 대한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그 해석에 대한 입증과 대책까지도 요구하는 듯 합니다.

 

놀랍게도 아무도 해석할 수 없었던 그 꿈을 요셉은 일곱해의 풍년과 일곱해의 흉년으로 즉각적으로 해석하며 풍년동안 곡식을 저장하여 흉년에 대비하도록 하는 대책을 제시하는데, 무엇보다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파라오에게 보이는 것“(25, 28)이라고 주장하며, 꿈을 두 번 겹쳐 꾼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고 하나님이 속히 행하실 것“(32)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본문은 요셉이 그러한 해석과 대책을 어떻게 얻게 되는지에 대하여 전혀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요셉이 말한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파라오에게 보이는 것이라는 말 속에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문맥적으로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요셉을 통하여 파라오에게 보이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요셉이 자신의 머릿 속에 떠오는 꿈의 의미와 그에 대한 대책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생각하며, 자신은 그것을 파라오에게 전하는 통로로 생각한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나아가 이러한 요셉의 확신과 분명한 답과 그 당당한 태도는 일개 히브리 노예로 감옥에서 살아온 청년으로서 이집트 왕궁의 파아오와 많은 고관들 앞에서 감히 보일 수 없는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이집트에서 신 자체, 혹은 신의 대리자로 여겨져 모든 꿈과 해석, 계시의 지배자인 파라오와 꿈을 해석하는 지혜와 방법들을 알고 있는 많은 술사들과 제사장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해석하지 못한 그 꿈을 해석하고 대책을 확신있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요셉의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믿음을 전제하며 보여주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요셉은 이집트에서 신으로 추앙받던 파라오가 감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행하심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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