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어제 본문에서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를 통해 형제를 팔고
가족을 떠나 가나안 족속과 함께 살며 자신의 생각과 방법을 따라 살아가던 유다가 자기 며느리 가나안 여자 다말이 행한 일이 유다 자신이 행한 것보다
옳다고 인정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집트 땅에서의 요셉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앞서 37장에서 형제들에 의한 죽음의 위기를 당하고, 특히 유다의 제안으로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 이집트로 끌려가게 된 요셉입니다. 문맥적으로 강제적으로
약속의 땅을 떠나 이집트 땅에서 노예로 살아가는 요셉의 삶은 자발적으로 약속의 땅을 벗어나 자신의 방법과 생각을 따라 가나안 족속 중에서 살아가던
38장의 유다의 삶과 비교가 됩니다. 과연 그러한 요셉의 삶은 어떠하며 과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삶이었을까요?
본문은 이집트 땅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파라오의 친위대장인
이집트 사람 보디발에게 팔렸다(1)는 언급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이러한 요셉의 삶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셔서 형통하였다“는 것이 지배적인 평가입니다. 먼저 주의해야 하는 것은 „형통하다“라는 단어의 의미입니다. 한국어 사전에 따르면,
„형통하다“라는 말은 온갖 일이 뜻대로 잘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말 성경에서 „형통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여러 가지인데, 오늘 본문에서 사용된 히브리어 단어는 „짜라흐“로 한국어 사전의 의미와는 다른 뜻을 가집니다. 기본 뜻은 „앞으로 나아가다, 돌진하다“이고, 다양한 문맥에서 „건너가다, 좋다, 적당하다 적절하다 유익하다 번영하다“ 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러한 의미를 염두에 두고 본문을 살펴봅니다.
2절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요셉이 형통하게 되어 그 주인 이집트 사람의 집에 있었다“고 언급합니다(2).
여기에서 „형통하다“는 말의 의미는
1절의 „보디발이 요셉을 샀다“는 언급과 연결되어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있게 되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가리킵니다.
즉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있게 된 것이 적절/적당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 가지 상황들을 생각하면, 세상적으로는 요셉이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기(6)
때문에 고위관직인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부리기에 적절했을 것입니다. 만약 요셉의
외적인 모양이 이집트 사람들이 보는 관점에서 약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고, 고위관직자의 집에서 노예로 부리기에 부적절했다면 보디발은 결코 요셉을 자신의 노예로 구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고위 관직자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있기에 적절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아마도 비록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는 중에 형들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 타격을 받았고, 또한 미디안 상인들에 의해 사막을 건너는 과정에서 육체적으로 약해지거나 어려움을 당하여 고위관직자의 노예로 부절절하게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막으셨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절은 보디발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과 여호와께서 요셉의 모든 일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보았다“는 말은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지켜보며 관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보디발은 자기가 새로 산 노예인 요셉이 어떠한 능력과 성품을 가지고 있는지 등에 대하여 주의깊게 관찰하고 살펴본 듯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보디발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셔서 요셉의 모든 일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형통하게 하심“의 문맥적인 뜻은 노예로서 요셉이
행하는 일들이 „적절하고 유익하다“는 의미입니다. 즉 노예로서 요셉이 주어진 일을 잘 행했다는 의미입니다. 생각해 보면, 십칠세의 소년으로 아버지의 집에서 관리자 역할 정도만 하던 요셉이 노예로서 주어진 일을 적절하고 유익하게 잘 행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고, 요셉이 노예로서 주어진 일을 적절하고 유익하게 잘 행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한 관찰의 결과로 보디발은 요셉을 자신을 시중드는
노예로 삼았고 나아가 그 일을 잘 행하자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아 주인의 소유를 관리하도록 합니다(4,5a).
특히 보디발이 요셉을 주인의 소유를 관리하는 자로 삼았을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이집트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셔서 여호와의 복이 그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있었다 고 본문은 언급합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에서 형제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 이집트에
끌려가 파라오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노예로 살게 된 요셉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요셉의
삶에 함께 하시며 요셉이 노예로서 그 주이에게 유익하게 하셨고, 심지어 요셉을 위하여 보디발에게 복을 베푸십니다.
이러한 요셉의 삶은 비록 형제들에게 배신당하고 이방인에게 팔려간 노예의 삶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삶이었습니다. 오직 우리 삶에 동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형통(유익)하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주께서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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