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6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28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29
이름을 노아라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30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31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32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어제 본문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던 에녹이었기에, 범죄한 인생의 삶인 „낳고 살다가 죽었다“는 패턴을 깨뜨린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러한 에녹이라는 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한 사람은 „낳고 살다가 죽는 삶“의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범죄한 인생의 패턴 속에서 살아가던 라멕(4장의 라멕과는 다른 사람)은 자기 아들의 이름을 “위로하다/안위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노아“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소망을 다음과 같이 피력합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29). 달리 말하면, 라멕은 범죄로
인한 그 결과들 중의 하나인 땅의 저주로 인한 수고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평안과 위로를 얻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라멕의 그러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범죄한 인간의 삶은 여전하며, 그들에게서 참된 회개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고, 그 결과 범죄한 인간은 참된 위로를 얻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범죄한 인간은 어디에서 참된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1:5)고 고백합니다. 즉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참된 위로를 얻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며
자비의 아버지이신 그분이 바로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고후1:3,4).
우리 모두에게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그리스도를 믿게 하셔서, 하나님의 참된 위로를 풍성히 누리도록 하심에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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