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것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 13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14 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15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16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
어제 본문에서 신약적으로 성도들의 기도를 의미하는 분향할 제단을 만들어 증거궤 위 속죄소의 맟은 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도록 하고 그 향연이 끊임없이 하나님께로 올라가도록 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25장부터 시작하여 31장에 이르는 성막과 그 기구들을 만들 것에 대한 명령의 거의 마지막 부분이지만, 표면적으로는 그 문맥적 흐름을 끊고 있는 듯합니다. 왜냐하면 성막과 그 기구들과 관계없어 보이는 „인구조사“와 각 사람이 내어야 할 „생명의 속전“에 대하여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문맥의 흐름을 끊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그러한 문맥적 흐름을 오히려 잘 보여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실제적으로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은 „회막 봉사에 사용할 비용“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16). 즉 회막과 그 기구들을 만드는 비용은 이미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발적으로 예물을 드림으로 충당하였습니다(25:1-7). 이제 남은 것은 그렇게 이미 만들어진 회막과 기구들을 날마다 사용하는 일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은 앞 뒤로 날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제사와 필요한 것들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제사장 직분을 행하는 이들과 관련된 비용(29:1-37), 날마다 아침과 저녁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제사의 내용물들(29:38-46), 날마다 아침과 저녁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향과 기름 등의 비용(30:1-10, 17-38) 등입니다.
이와 같이 이미 회막과 그 기구를 만드는 비용과 관련해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개별적이며 자발적인 헌물과 헌금 등으로 충당하였지만(25:1-7), 날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에 있어 필요한 비용과 관련해서 하나님은 20세 이상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 세겔의 비용을 내게 하십니다(14). 특히 부자라고 해서 더 많이 내지 말고, 가난하다고 하여 더 적게 내지 말도록 명하십니다(15). 이것을 „생명의 속전“이라고 칭하면서, 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 중에 질병이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에서 언급된 질병은 일상적인 병이 아니라, 이집트에 내리신 것과 같은 하나님의 진노로 내리시는 심판적 측면으로서의 재앙과 같은 것입니다. 즉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날마다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와 불순종으로 인해 심판받는 것을 막아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속전“(코페르)의 원래 의미는 „덮개“를 의미합니다. 노아홍수 심판의 문맥에서는 방주의 안팎에 칠해 물이 새는 것을 방지한 „역청“이라고 번역됩니다. 또한 언약궤를 덮은 뚜껑인 „속죄소“(카포레트)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것이 “생명의 속전“으로 칭해지는 이유는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기억하게 하는 것(기념)이 되어 그들의 생명을 대신 속하기(카파르, 덮다, 용서하다)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각 사람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셨기에, 자기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여호와 앞에 생명은 모두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을 드러내며 가장 가난한 자라도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반세겔로 정해 놓으셨습니다. 이것은 반세겔의 헌금이 결코 대속하는 효력이나 능력을 발휘한 것이 아님도 보여줍니다. 그 반세겔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기억하는 계기가 되도록 한 것일 뿐입니다.
신약적으로는 우리 주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막10:45). 좀더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습니다(갈1:4). 결국 사도 베드로가 말하듯, 우리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벧전1:18,19) 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의 생명을 위하여 예수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값을 지불하셨음을 믿고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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