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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2년 4월 28일 목요일 큐티본문설명(룻 2:14-19)2022-04-2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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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15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16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17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18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어머니에게 드리매 19 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누구에게서 일한 것을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하는지라

 

보아스는 자기의 종보다 못한 처지의 모압여인 룻을 자신의 식탁에 앉게 하고 먹을 것을 제공하고 나아가 룻이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먹을 것을 위해 이삭 줍는 일에 도움을 베풉니다. 룻이 무려 한 에바(22리터)나 되는 보리를 가지고 오자, 나오미는 특별히 누군가가 룻을돌보았다는 것을 압니다. 이처럼 호의와 돌봄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우리들도 이러한 호의와 돌봄을 더 많이 베풀 수 있도록 합시다.

 

어제 본문에서 우리는 베들레헴의 유력자 보아스가 모압여인 룻에게 호의를 베푸는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즉 보아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모압여인 룻에게 주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따라 호의를 베푼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계속해서 보아스가 모압여인 룻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먼저 보아스는 모압여인 룻을 자신의 식탁으로 초대하여 먹을 것을 베풉니다. 이것은 사실상 이방여인이며 모압여인인 룻을 이스라엘 사람으로 여기며 함께 식탁에 앉은 것이며 나아가 곡식 베는 자와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보아스는 자기 소년들(일꾼들)에게 룻이 곡식 단 사이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는 것을 책망하지 말고, 심지어 룻을 위해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룻으로 하여금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고 명령합니다. 여기에서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에게조차도 사실상 금지된 것인데, 왜냐하면 바닥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곡식 단에서 조금씩 이삭을 빼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군가 곡식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는 경우 그것은 책망당하고 꾸짖음 당하는 행동입니다. 우리 번역의 책망하다모욕하다, 부끄럽게 하다는 의미로 사실상 도둑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룻은 이스라엘 사람도 아닌 모압 사람입니다. 상식적으로 결코 허락될 수 없는 일이지만, 보아스는 오히려 의도적으로 룻으로 하여금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도록 허락합니다. 이러한 보아스의 호의의 결과 저녁 즈음까지 룻이 주은 보리는 한 에바”, 즉 무려 22리터나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보리추수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룻과 나오미가 계속해서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보아스의 호의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보리추수는 4-5, 밀추수는 6-7, 마지막으로 9-10월에는 포도 등의 과일을 추수하였습니다.)

 

나아가 상식 밖의 많은 양의 보리는 나오미로 하여금 그것이 누군가의 호의 때문인 것을 알게 합니다. 그렇기에 나오미는 룻에게 누구의 밭에서 일을 하였는지 물어보고 나아가 너를 돌본 이에게 복이 있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돌보다로 번역된 단어는 주의하다, 주목하다 존중하다, 인정하다는 의미입니다. 즉 나오미는 누군가가 모압여인 룻을 존중하고 인정하여 호의를 베풀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호의는 나오미조차도 기대할 수 없었던 호의이며 존중이며 인정입니다. 이것은 이어지는 나오미의 행동의 계기가 됩니다. 미리 말하면, 나오미가 돌아왔지만 이방여인이자 모압여인인 룻을 며느리로 데려왔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나서서 기업무를 일을 하지 않고, 심지어 나오미도 그것에 대하여 침묵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즉 사실상 포기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이제 조금이라도 소망의 불씨를 발견합니다: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입니다”(19).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호의와 돌봄은 드러나기 마련이며 이것은 결국 또 다른 소망의 불씨가 됩니다. 오늘 우리들도 누군가에서 소망의 불씨가 되는 이러한 호의와 돌봄을 더 많이 베풀 수 있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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