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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3년 4월 25일 화요일 큐티본문설명(사무엘상 1장9-18절)2023-04-25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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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 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어제 본문에서 모든 사람이 자기 소견대로 행하던 시대에도 엘가나와 그 가족은 말씀에 따라 매년 온 가족이 실로에 올라가 예배하며 제사를 드리는 모범적인 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족이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어려움과 갈등이 있었고 그것은 엘가나의 노력에도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한 가족의 갈등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엘가나가 행한 노력의 결과에서 이어집니다: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8). 세번이나 반복된 어찌하여라는 호소에서 우리는 그 남편 엘가나의 마음을 보게 되며 나아가 이 갈등과 어려움이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일인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여호와의 집으로 올라갈 때마다 엘가나가 한나에게 갑절의 제물의 분깃을 준 것이 오히려 그 갈등과 어려움을 더욱 심하게 만듭니다(4,5, 7).

 

이제 본문은 한나에게로 집중합니다. 그들이 실로에서 예배를 드리고 제사를 드린 후, 한나는 제사장 엘리가 지키고 있는 성막 앞으로 나아가 통곡하며 오랫동안 속으로 말하며 음성이 들리지 않게 입술만 움직이며 기도합니다(9,10, 12,13). 이렇게 한나는 마음의 괴로움(10)과 슬픔(15)의 심정을 긴 시간동안 하나님께 드러내고 토로합니다. 왜냐하면 한나 자신이 말하듯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았기 때문입니다(16). 즉 한나는 분노와 슬픔과 그 답답한 자신의 감정과 생각과 그 속마음을 하나님께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비록 외적으로 큰 소리를 내거나 행동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한나는 진실되게 기도합니다. 또한 한나는 만약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을 돌보시며 자신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시며 아들을 주시면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겠다는 나실인의 서원을 합니다(11). 왜냐하면 당시에 자녀가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태를 닫으신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5). 여기에서 아들을 드리겠다는 표현은 한나의 약속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한나가 이미 믿음으로 아들을 드렸다는 의미도 포함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가 없는 이유로 고통과 슬픔 중에 있는 여인이라면 자녀가 태어난 즉시 그 자녀를 결코 포기하거나 드릴 수 없지만, 한나는 심지어 태어나지도 않은 자녀를 이미 드립니다. 이것은 한나가 여호와께서 자신의 고통을 돌보시고 자신을 기억하며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으며 확신하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믿음과 확신 속에서 한나는 기도 후 돌아가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의 빛이 없었고, 또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께 경배를 드리고 돌아갑니다(18,19). 이러한 한나의 모습은 놀랍습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한나의 고통과 슬픔과 괴로움이 실제적으로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심지어 그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이며 경험적인 응답조차도 없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멸시하고 괴롭게 하는 브닌나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한나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한나의 믿음을 보게 됩니다. 한나는 자신을 멸시하고 괴롭게 하는 브닌나에게 보복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태를 닫으신 분이시기에 또한 자신의 태를 여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cf. 2:1-10). 나아가 우리는 이러한 한나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사람의 나라가 어려움과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다른 것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은 어려움과 갈등을 해결하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으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호소하는 자들이며 신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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