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아합 왕 제사년에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 되니 여호사밧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삼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수바라 실히의 딸이더라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키지 아니하고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왕과 더불어 화평하니라 여호사밧의 남은 사적과 그가 부린 권세와 그가 어떻게 전쟁하였는지는 다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그의 아버지 아사의 시대에 남아 있던 남색하는 자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그 때에 에돔에는 왕이 없고
섭정 왕이 있었더라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박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구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내 종으로 당신의 종과 함께 배에 가게 하라 하나 여호사밧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사밧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아사에 이어서 유다왕이 된 여호사밧은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합니다. 그러나 세력과 권력이 강해졌을 때에는 북이스라엘 아합왕과 사돈지간이 되어 서로 왕래합니다. 선견자 예후는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대하19:2)고 말하며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선언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누구를 사랑하며 돕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오늘 본문은 북이스라엘의 아합왕과 사돈관계를 맺고 협력한
남유다의 여호사밧왕에 대한 말씀입니다. 비록 여호사밧왕이 그의 아버지 아사왕이 행한 길을 따라서 여호와
앞에 정직하게 행하며 또한 나라를 견고하게 하였습니다. 역대하 17장 6절은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치게 되자, 자신의 아들 여호람을 아합왕의 딸 아달랴와 혼인시켜 아합왕과 인척관계를 맺고 협력합니다. 어제 본문에서 살펴 본 것처럼, 비록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을 아합왕광
협력하여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여 아합왕은 죽고 여호사밧왕은 겨우 살아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때 선견자 예후는 여호사밧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지적하면서, 이 때문에 여호와의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대하 19:1-2). 그러나 이후에도 여호사밧왕은 심히 악을 행하던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와 교제하여 함께 연합하여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어 다시스로 보내고자 하였지만, 엘리에셀이
경고한 것처럼 결국 실패합니다(대하20:31-37). 이러한
남유다의 여호사밧왕의 정책들은 이후 아합왕의 딸 아달랴가 자신과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 왕이 죽은 이후 왕의 자손을 다 죽이고 스스로 유다의 왕이
되어 다스리고 오직 요아스만 숨어서 살아남게 되는 끔찍한 사건의 계기가 됩니다(왕하 11).
이처럼 비록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길을 따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세상적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와 악한 자와 친밀한 관계를 통해 정치적인 안정과 나라의 부강을
이루었던 것은 결국 북이스라엘과 동일하게 남유다도 또한 타락의 길을 걷게 되는 첫 단추가 됩니다. 오늘
우리들은 세상적인 관계에서의 유익을 위하여 여호와를 미워하며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지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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