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 하더라 팔 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그 어머니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그들이 이르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그의 아버지께 몸짓하여
무엇으로 이름을 지으려 하는가 물으니 저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 쓰매 다 놀랍게 여기더라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골에 두루 퍼지매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이르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하니 이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심이러라
나이가 많던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았고 이웃과 친족이 함께
기뻐합니다.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그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 천사가 전해준 말씀을 믿음으로 인정하며
받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는 복음의 소식을 믿음으로
인정하며 받으며 기쁨으로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하루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천사가 사가랴에게 예고한 이후 10달이 지나, 드디어 요한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웃과 친족이 함께 즐거워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 이유를
이렇게 알려줍니다: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앞서
우리가 살폈던 것처럼, 당시에는 자녀가 없는 것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의미로 많이 이해했습니다. 그런 상태로 젊은 시절부터 이제 나이가 많아 늙은 시절까지 지내온 엘리사벳이 드디어 자녀를 출산했습니다. 더구나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결코 있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그녀에 대하여 긍휼을 크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당시 사람들이 이해했다고 본문은 알려줍니다. 또한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아이의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아이의
이름을 “벤 사가랴”(사가랴의 아들)라고 해야 할 당시의 관습을 따르지 않고 천사가 알려준 “요한”이라고 이름을 부릅니다. 즉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모두 천사가 전해
준 말씀을 온전히 인정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본문의 흐름을 단어들로 요약하면 “버림받음 – 긍휼히 여김 – 긍휼의
방법 – 긍휼에 대한 순종”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예수님의 오심과 관련해서도 그대로 적용되며 확대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로 인해 버림받은 이들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을 우리 모두에게 가져오신 분이십니다. 사실상 이러한
예수님의 오심은 죄인인 우리들에 대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일서 4장 9-10절
엘리사벳과 사가랴처럼 우리들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오심을
기대하며 소망하며 주님의 오심을 믿음으로 받는 하루가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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