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이 두 집 곧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이십 년 만에
건축하기를 마치고 갈릴리 땅의 성읍 스무 곳을 히람에게 주었으니 이는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그 온갖 소원대로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제공하였음이라
히람이 두로에서 와서 솔로몬이 자기에게 준 성읍들을 보고 눈에 들지 아니하여 이르기를 내 형제여 내게 준 이 성읍들이 이러한가 하고 이름하여 가불
땅이라 하였더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있느니라 히람이 금 일백이십 달란트를 왕에게 보내었더라
솔로몬은 두로의 히람에게 갈릴리 땅의 성읍 20개를 넘겨주는데, 성전건축에 사용된 자재들보다 땅의 가치가 더
큰 관계로 히람은 솔로몬에게 돈을 더 지불합니다. 이런 솔로몬의 결정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약속의 땅을
돈을 받고 넘겨주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행하는 일이
오히려 말씀에서 멀어지는 모습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아봅시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대신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을 선택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일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과 그리 관련이 없어 보이며, 나아가 죄를 범하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 어떤 일들을 행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금상첨화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는 솔로몬의
모습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건축하기 위한 다는 그럴듯하고 선한 듯한 목적과 그리 쓸모있지
않은 갈릴리의 가불(굳고 메마르다는 의미) 땅을 성전건축을
위한 자재들 뿐만 아니라 금 일백 이십 달란트까지 더 받아 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거래는 있을
수 없는 듯 합니다. 일거 양득, 아니, 일거 삼득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크나큰 함정이 있습니다.
먼저 솔로몬이 은근슬쩍 모른
척 넘어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가불 땅”은 원래 아셀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이었습니다(수19:27). 즉 이곳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으로 결코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도 매매되거나 양도될 수 없는
땅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이방 사람인 두로의 히람에게 솔로몬은 그곳을 넘겨줍니다. 다음으로 이렇게 솔로몬이 넘겨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땅에 대한 세상적인 관점에서의 평가 때문입니다. 즉 그곳은 가치가 없어 보였고 굳고 메마른 곳으로 세상적인 평가와 가치관에서는 가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대해 세상적인 기준으로 평가하였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마지마으로
세상적인 관점에서 가치가 없는 그곳을 넘겨주는 대신 성전을 건축한다는 거룩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재료들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금일백이십달란트까지
더 값을 쳐서 받습니다. 이보다 더 잘 된 거래가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세상적인 가치관과 기준으로 평가하여 최대의 이문을 남기는 모습에 불과합니다. 결국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따르는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믿음의 삶에도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세상적인 가치관을 더 중요시하며,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봅시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첫 단추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타협의 첫 걸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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