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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0년 10월 9일 금요일 큐티본문설명(왕상 2:36-46)2020-10-08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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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너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정녕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 가리라 시므이가 왕께 대답하되 이 말씀이 좋사오니 내 주 왕의 말씀대로 종이 그리하겠나이다 하고 이에 날이 오래도록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삼 년 후에 시므이의 두 종이 가드 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도망하여 간지라 혹이 시므이에게 고하여 가로되 당신의 종이 가드에 있나이다 시므이가 그 종을 찾으려고 일어나 그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가드로 가서 아기스에게 나아가 그 종을 가드에서 데려왔더니 시므이가 예루살렘에서부터 가드에 갔다가 돌아온 일을 혹이 솔로몬에게 고한지라 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내가 너로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고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밖으로 나가서 어디든지 가는 날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도 내게 말하기를 내가 들은 말씀이 좋으니이다 하였거늘 네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가리켜 한 맹세와 내가 네게 이른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느냐 왕이 또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무릇 네 마음의 아는 모든 악 곧 내 부친에게 행한 바를 네가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 보내시리라 그러나 솔로몬 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위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서 견고히 서리라 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하매 저가 나가서 시므이를 쳐서 죽게 한지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시므이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상황에 따라서 행동하며 심지어 하나님이나 왕의 뜻과 명령조차도 무시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나에게도 나 자신을 위해 상황과 형편에 따라 행동하며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무시하는 일은 없는지 돌아보며, 자주 변하는 상황이나 형편에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도록 기도합시다.

 

계속해서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이 유언한 시므이에 대한 일을 진행합니다. 사무엘하 16장에 따르면, 압살롬이 반역하여 다윗이 맨발로 도망하던 중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목인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 사울 가문의 게라의 아들인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며 돌을 던집니다. 특히 시므온은 다윗을 사악한 자로 칭하면서 여호와께서 사울 족속의 피를 다윗에게 돌리셨고 여호와께서 나라를 압살롬에게 넘기셨다라고 여호와의 이름을 빌려 저주합니다. 이때 다윗은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셔서 그 저주 때문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고 말하면서 따라오면서 저주하는 시므이를 그냥 놓아둡니다(삼하 16:12).

 

그런데 사무엘하 19장에 따르면, 압살롬의 반란이 진압되고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요단을 건너려고 길갈에 도착했을 때, 시므이는 급히 유다 사람들과 함께 다윗을 맞으러 내려 옵니다. 이때 베냐민 사람 천명,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명과 함께 요단을 건너 다윗 왕에게로 나아옵니다. 이것을 보면 시므이는 베냐민 지파의 유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시므이는 다윗 앞에 엎드려 이전에 다윗이 도망할 때 자신이 행한 일을 패역한 일임을 인정하며 다윗에게 기억하지 말고 마음에 두지 말기를 요청합니다. 심지어 시므이는 스스로를 왕의 종으로 자처하며 자신이 범죄한 줄 알기 때문에 요셉의 족속중 자신이 먼저 내려와 내 주 왕을 영접합니다 라고 말합니다(삼하 19:19-20). 이때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요압의 동생)가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다윗은 거절하고 시므이가 죽지 않으리라 약속합니다. 아마도 만약 이때 다윗이 시므이를 죽였다면, 그와 함께 나온 베냐민 사람 천명은 다 도망하고 다시 전쟁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즉 시므이는 자신의 생명을 구하고자 교묘하게 상황과 베냐민 사람들을 이용합니다. 다윗은 이러한 이유로 시므이를 살려줍니다.

 

이후 아도니야의 반란 때에, 시므이는 아도니야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 중에 있고(왕상1:8), 2 8절에서 다윗이 유언하면서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볼 때, 시므이는 아도니야의 반란에 가담하지 않고 오히려 솔로몬을 지지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후 다윗은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기면서, 시므이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라고 하면서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고 말합니다(왕상 2:8-9). 이러한 다윗의 유언을 따라 솔로몬은 시므이를 불러 예루살렘에 집을 짓고 살며 예루살렘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명령을 내리며 특히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임을 여호와 앞에서 선언합니다. 시므이도 솔로몬의 이러한 명령을 오히려 좋아하면서 여호와 앞에서 맹세하는데, 왜냐하면 바후림이라는 시골마을이 아닌 왕의 도성에서 정식으로 거주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시므이로써는 아도니야가 아닌 솔로몬의 편에 선 자신에 대한 보상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삼년의 시간이 흐른 후, 자신의 두 종이 가드 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도망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 시므이는 직접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가드로 가서 아기스에게서부터 종을 데려옵니다(참고 시므이). 이것을 알게된 솔로몬은 시므이를 불러 책망하는데, 그 이유는 여호와를 두고 한 맹세와 왕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이어서 솔로몬은 시므이가 마음으로 알고 있는 모든 악, 즉 다윗에게 행한 바를 알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여호와께서 그 악을 시므이에게 되돌력 보낸다고 선언합니다. 나아가 솔로몬은 다윗의 왕위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서 견고히 서리라고 선언하고 시므이를 처형합니다.

 

이처럼 시므이는 상황과 형편에 따라서 자신에게 유익하고 좋은 쪽으로 그 행동과 모습을 바꾸며, 특히 여호와 앞에 맹세한 것과 왕의 명령도 무시하며 자신의 유익을 위해 행동합니다. 이처럼 나에게도 나 자신을 위해 상황과 형편에 따라 행동하며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무시하는 일은 없는지 돌아보며, 자주 변하는 상황이나 형편에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도록 기도합시다.

 

참고 시므이

오늘 본문에서 시므이와 두 종들에 대한 언급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습니다. 즉 종(노예)에 불과한 이들이 가드 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도망하고, 시므이도 도망간 노예를 찾기 위해 아기스에게로 직접 내려가 데려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입니다. 먼저 가드라는 도시는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접경지역에 있던 블레셋 족속의 가장 강력한 요새였고 그곳의 사람들은 거인과 장대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골리앗같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가드의 사람들은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할 때 언제가 가장 앞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던 사람들입니다. 사울왕과 다윗왕의 시대에 끊임없이 이스라엘과 전쟁했던 곳이며 다윗에 의해 어느 정도 복속되었으나 여전히 이방지역이며 전운이 감도는 곳입니다. 이러한 곳을 베냐민 지파의 대표자격이었던 시므이가 도망친 두 종을 데려오기 위해 직접 내려갑니다. 더구나 두 종들과 시므이는 모두 그 지역을 다스리던 가드 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를 찾아갑니다. 또한 왕상 2 41절에서 어떤 사람이 시므이가 예루살렘에서부터 가드에 갔다가 돌아온 일을 솔로몬에게 말합니다. 여기에서 도망친 두 종들에 대한 이야기는 빠져있으며 이후의 전개되는 과정에서 솔로몬의 말에서도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이런 본문의 정황들은 시므이가 가드로 내려갔다가 올라온 것이 단지 도망친 두 종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고 추측하게 합니다. 즉 두 종은 단순히 도망친 것이 아니라 시므이의 명령을 받아 가드왕의 아들 아기스를 찾아갔고, 시므이는 이것을 노예가 도망했다고 핑계하여 자신이 직접 가드로 내려갈 이유를 의도적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시므이는 베냐민 지파의 우두머리로써 솔로몬에 대한 반연합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가드로 내려간 것이 아닐까 추측이 됩니다. 당시에는 강력한 군사력을 발휘하던 다윗 왕은 죽은 상황이고, 솔로몬은 즉위한지 3년정도 된 상황입니다. 또한 솔로몬 왕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제사장 아비아달이 파직되고 군대장관 요압과 처형되는 등 정치적 분위기가 상당히 좋지 않은 시기입니다. 어쩌면 시므이는 아비아달과 요압에 이어 다음 차례로 처형되는 것은 자신일 것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므이는 솔로몬의 왕권이 더 확실해지고 굳어지기 전에 나름의 방법을 찾아야 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추정은 2 46절에서 시므이가 죽은지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 지니라는 언급으로도 확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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