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3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네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5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6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7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8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9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 10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아 있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가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1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에게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에게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지난 본문에서 이삭이 출생하고 일곱우물의 소유권을 얻은
있었던 하나님의 시험에서 아브라함은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인정을 받았고, 그러한 아브라함에게
40여년간 소식을 모르던 동생 나홀과 그 가족에 대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라가 백이십칠세를 살았다“는 언급으로 시작합니다(1). 사라는 아브라함과 함께 하란을 65세에 떠나 90세에
이삭을 낳았고, 이후 37년의 세월동안 아브라함과 함께 독자 이삭을
양육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라는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습니다(2).
이곳은 바로 조카 롯과 헤어진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며 걸어보라고 말하시면서 땅을 약속하신 바로 그곳입니다(창13:14-18). 이렇게 사라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 대하여 더욱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말씀하신 바로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서 처음으로 밭을 소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라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통하던 아브라함은 그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헷 족속에게 가서 자기 자신을 „나그네와 거류하는 자“(4)로 지칭하면서,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묘실)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시오“(4)라고 부탁합니다. 이에
대하여 헷족속은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6)라고 답합니다. 여기에서 „매장할 소유“,
„묘실“에 대한 언급들은 모두 „가매장“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매장관습에 „고향의 가족무덤“에 묻히는 것이 복된 죽음/매장으로 사후의
평안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야곱과 요셉(창50:5, 25). 생각해 보면, 아브라함은 충분히
땅을 소유할 수 있는 재물과 권위와 세력을 가지고 있었고 오랜 세월동안 그 땅에서 거주하였지만(62년),
여전히 나그네와 거류하는 자로 스스로를 알고 매장지를 소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땅에 „묘실“을 만들어 완전히 소유한다는 말은 자손대대로
그 땅의 주인이며 어디로 가서 살든지 다시금 그 땅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헷족속이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6)라는 그럴듯한
표현을 사용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결국 당신은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브라함을 지도자로 세우신 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족속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나 헷족속이나 모두가 아브라함은 그 땅에 자신의 완전한 소유로서의 매장지(묘실, 동굴)을 가질 수 없고, 단지 임시로 빌려서 사용할 수만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제 사라의 죽음 앞에서 아브라함은 그 땅에 묘실을
만들어 자기 소유로 하고자 뜻을 드러냅니다: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9b). 아브라함은 자신이 대가를
주고 얻고자 하는 그 굴과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분명히 말합니다: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주어“(9a). 이것은 결국 아브라함이 자기 아버지가 묻힌
가족무덤이 있는 하란으로 결코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하란이 자신의 고향이 아니라 바로 이곳 약속의 땅이 자신의 고향이며 자신이 묻힐 곳이며 자신의 자손 대대로
살아가며 묻히게 될 가족무덤이 있게 될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달리 말하면, 사라의 죽음과 함께 이제 드디어 아브라함은 바로 그 땅을 자기 고향으로 여깁니다. 왜냐하면
이 땅이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세상적인 고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자신의 고향이며 자신이 돌아갈 곳으로 믿음으로 받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히브리서 11장 10절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소망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를 우리의 본향으로 삼고 소망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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