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는 아랫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베드로는 “이 사람을 모른다”라고 세 번 부인한 후, 통곡합니다. 마치 주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오늘 우리는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베드로의 모습 속에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며 함께 통곡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잘 알려진,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베드로에게 던져진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이 사람은 그 도당(그들 중의 하나)이라 참으로 그 도당(그들 중의 하나)이니라 베드로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다 부인하더라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우리는 지금까지 마가복음을
통해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제자됨의 본질임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베드로는 “예수와 함께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고 선언합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는 “예수와 함께 거하는 자들 중의 하나”임을 부인합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지금까지 함께 거하였던 “이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저주하며 맹세합니다. 이렇게 보면, 베드로는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예수님과 함께 거하였던 그 시간들, 그 경험들, 그
은혜들, 그 고백들을 모두 부인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치
예수를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스스로를 속입니다. 때로 우리는 극심한 어려움이나
슬픔,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지나간 믿음의 삶을 부정하고 거부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직접적인 선언으로 나타나든, 마음 깊은 곳의 의심과 부인으로
도사리고 있든, 아니면, 무의식적인 말과 행동 속에서 드러나든, 극심한 어려움, 슬픔이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우리에게 지나간
믿음의 삶을 부정하게 하는 도전에 직면하게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런 도전을 가까스로 혹은 잘 이겨내기도
하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그런 도전에 실패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말씀은
이런 도전이 우리의 믿음의 삶에서 계속해서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 도전을 때로 잘 이겨내고
때로 넘어지면서 우리는 믿음의 모험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듯, 베드로는 그런 도전에 실패하여 통곡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갑니다. 이런 우리들을 향한 히브리서 12장 12,13절의 위로와 권고를 따라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걷는 이 믿음의 길 끝에서, 우리는 마침내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에 이를 것”이기 때문입니다(히12:22-24).
오늘 어려움과 슬픔,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 모두가 이 하늘의 소망을 붙잡고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가복음, #큐티, #베드로의 부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인교회, #장로교회, #고신, #Frankfurt, #Germany, #Manna, #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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