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5월 28일 목요일 큐티본문설명(행9:1-9; 참고: 행22:3-21; 26: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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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0년 5월 28일 목요일 큐티본문설명(행9:1-9; 참고: 행22:3-21; 26:9-18)2020-05-27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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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주님께서는 주님의 제자들을 박해하며 감옥에 가두던 사울을 찾아가셔서 그를 부르십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어떠한 죄인이라도 부르시고 복음의 선포를 받아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다시 한번 죄인이었던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하루의 시간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오늘 본문은 8 1절에서 스데반의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기고 성도들을 박해한 사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8장에서 사울은 예루살렘과 그 주변지역에서 성도들과 교회를 박해하였는데, 오늘 본문인 9장에서는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살기와 위협으로 가득하여 멀리 떨어진 다메섹(예루살렘에서 약 217Km)까지 갑니다. 이것은 사마리아와 유대 전 지역으로 도망한 성도들이 그런 어려움 중에도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울은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요청합니다. 앞서 우리는 5장에서 사울의 선생이었던 가말리엘에 대하여 잠시 살폈습니다만, 그 사이에 상황이 변하여 제사장들 중에서도 복음의 증거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겼고 헬라파 유대인들 중에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의 변화로 바리새인을 대표하는 가말리엘 문하에서도 이전의 애매모호한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였고, 그 대표적인 활동가는 바로 사울입니다. 사울이 대제사장을 찾아가서 공문을 요청하고 대제사장이 그런 사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대제사장을 비롯한 사두개파와 가말리엘을 비롯한 바리새파가 적어로 예수를 믿는 자들에 대하여는 같은 입장을 취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사울은 모든 세력의 지원을 등에 업고 위협과 살기로 가득하여 다메섹으로 출발합니다. 누구든지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누구든지 예루살렘으로 잡아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런 사울을 다메섹 가까운 길에서 직접 찾아가시고 직접 부르시고 직접 인도하십니다. 이 이야기는 사도행전 22:3-21 26:9-18에서 바울 자신도 이야기하는데, 여기에는 어떠한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롭고 직접적인 찾아오심과 부르심과 인도하심이 증언될 뿐입니다. 특히 내일 살펴볼 915절에서 주님께서는 아나니아에게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은 행1 8절에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사울이라는 그릇을 준비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물론 우리는 하필이면 사울인가 라는 질문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박해에 앞장 서던 자가 오히려 그 반대로 예수를 증거할 때의 놀라움과 그 극적인 효과, 유대전통과 헬라전통에 익숙한 사울의 출신과 배움, 사울이라는 사람의 인격적이며 개인적인 특성인 곧고 굳셈 등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추측해 볼 수는 있지만, 성경은 어디에서도 그 구체적이며 직접적인 이유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그 모든 것 때문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서 은혜와 자비와 능력으로 핍박자였던 자신을 주권적이며 강권적으로 찾아오셔서 부르시고 거듭나게 하셔서 임무를 맡기셨다고 증언합니다.

 

이러한 바울의 증언은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본문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주님께서는 살기와 위협으로 숨쉬며 누구든지 만나는 예수믿는 자들을 죽이고 끌고 가려고 다메섹으로 달려가는 바로 그 사울을 찾아가셔서 나는 네가 핍박하는 바로 그 예수이다라고 알려주시고 부르십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은 앞서 7장에서 스데반이 보여주었던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는 모습에 반영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생명을 내어주시며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지금 이 이야기를 읽는 우리 앞에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는 어떠한 죄인이라도 부르시며 복음의 선포를 받아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는 것을 감사하며 우리 또한 주님의 이러한 은혜의 찾아오심과 부르심과 인도하심으로 회개하여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감사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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