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지 오래냐 묻고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마지막 순간에 기다리던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 동참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고 있습니까? 오늘은 전통적으로 성금요일로
칭해져서 많은 교회들이 금요일 저녁에 따로 특별히 모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일어로는 Karfreitag이라고 하는데, Kar는 “슬픔, 고난” 등을 의미하는
고전독어입니다. 즉 이 금요일에 새벽에 잡히시고, 빌라도에게
재판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숨을 거두시고,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이 시대에 로마군은 십자가에
처형한 시체를 그대로 십자가에 매달아 놓아 경고를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스라엘 지방에서는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 시체를 내려 게헨나, 즉 예루살렘 밖에 위치한 쓰레기 처리장에 내다버려 이교도의 화장형식을
따라 처리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에는 아리마대 요셉이 용감하게 나서서 로마군의 관례대로가 아니라
어느 정도 전통적인 유대관례에 따라 장례가 진행되었습니다. 이 일을 중재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공회원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가에 따르면 아리마대 요셉은 공회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눅23:51). 요한복음에 따르면,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으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고 있었습니다(요19:38).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스스로가 예수의 제자인
것을 드러냅니다. 그는 당돌히(용감하게) 빌라도를 찾아가서 예수의 시체를 내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아마도
아리마대 요셉의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많은 작용을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드러낸 요셉에 의해
예수님의 시체는 세마포에 싸여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지고 큰 돌이 무덤을 막습니다. 이처럼 비록 유대인이 두려워
예수의 제자인 것을 숨기던 요셉이지만, 예수님의 죽음 앞에 그는 스스로를 드러내어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에
참여합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중심에 두고 그 앞에는 구레네 사람 시몬, 그 위에는 아리마대 요셉을 두고 그들 각각이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십자가의
죽음-에 참여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수치와 모욕과 두려움 속에서 “억지로” 참여하였고,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용감하게” 참여합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나는
어떻게 예수님의 사역,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참여하는가 돌아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억지로” 하든, “용감하게” 하든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참여하는 복이 우리들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마가복음, #큐티, #십자가, #예수님, #아리마대_요셉, #무덤,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인교회, #장로교, #고신, #Frankfurt, #Germany, #Manna, #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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