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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4년 4월 11일 목요일 큐티본문설명(창세기 20장1-8절)2024-04-1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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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2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4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8 아비멜렉이 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모든 종들을 불러 그 모든 일을 말하여 들려주니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어제 본문에서 하나님의 자비로 생명을 얻었던 롯이 소알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오히려 두려움으로 소알을 떠나 산으로 들어가 동굴에서 살아갔고 그러한 불신앙적인 선택은 롯의 두 딸들에게서도 계속되고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소돔 지역의 멸망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을 보여줍니다. 소돔 지역에 하늘로부터 유황과 불이 떨어진 바로 그 아침에 일찍이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목격합니다(19:27-28). 19장의 본문은 아브라함이 목격한 그러한 멸망에서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다(19:29)고 말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호소한 것(18:22-33)을 들으셨음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러한 연기가 치솟는 그 지역을 바라보면서도, 자기 조카 롯을 찾지 않고 심지어 남은 인생 중에도 롯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사실상 창세기에서 롯에 대한 언급은 19장을 끝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소돔 지역의 멸망 중에 자기 조카 롯과 그 가족도 함께 멸망당한 것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한편으로 아브라함이 의인을 죄인과 함께 멸하지 않기를 호소한 것이 단지 롯을 생각해서가 아님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 아브라함의 호소가 의인 열명이 있다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 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즉 아브라함은 나름대로 의인 열명이라는 기준을 스스로 하나님께 제시하였고 그에 대해 하나님도 내가 열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않으리라 답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 온 지역이 멸망당한 것을 목격하였다는 것은 그 지역에서 아브라함이 생각한 의인 열명이 없었다는 것을 확증해 주는 것입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이렇게 자신이 정한 기준에 따라 심지어 롯이 의인일지라도 그 지역의 멸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스스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베드로후서 2장 6-8절은 하나님께서는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다고 말하는데, 이에 따르면 의로운 롯을 하나님은 건지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정한 열명이 아니라, 한명이라고 의인이 악인과 함께 멸망당하지 않도록 하시는 의롭고 정의로운 분이십니다.

한가지 더 생각할 것은 창세기 19장과 베드로후서 2장에서 말하는 „의로움“은 신약성경이 말하는 참되고 영원한 의로움이 아니라 창세기의 시대에 한정된 관습적인 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은 곧 „나그네를 환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롯이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진실되이 믿는 자였는지 우리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에 한정된 관습적인 의를 어느 정도 인정하셔서 그러한 의를 행하지 않는 세대에 대한 심판에서 그러한 관습적인 의를 행하는 롯을 인정하셔서 일시적으로 구원하셨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아브라함은 나름대로의 자신의 기준으로 인해 하나님이 롯을 구원하셨다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 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베푸신 자비를 보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 즉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만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아브라함은 이전에 하나님 앞에서 서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하심에 호소하던 그곳이지만, 지금은 하나님없이 홀로 서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신뢰하였다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문제는 아브라함의 이러한 모습이 곧장 또다른 어리석은 판단과 결정과 실행으로 이어졌다는 것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그곳에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서 거주합니다(20:1). 왜냐하면 옹기가마의 연기같이 치솟는 그 소돔과 주변의 도시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자비보다는 하나님의 심판만을 생각하였고, 두려움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옮겨간 그랄은 해변 가까운 지역으로 블레셋 족속에게 속한 땅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이전에 행한 어리석은 모습을 그곳에서도 또다시 보입니다. 사람의 지혜와 방법을 따라 다시 한번 자기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로 소개한 일입니다. 그러자 당시의 여러 가지 관행을 따라 그랄 왕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의 누이 사라를 데려갑니다. 아마도 상당한 인원을 포함하는 아브라함의 부족/가족이 왔기 때문에, 권력적 협력과 동시에 정치적 볼보로 삼기 위해서 였을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이 되자,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꿈으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이 „온전한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을 아시고 그를 막아 범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6). 즉 하나님은 아비멜렉이 말하는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십니까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라는 질문에 대하여 그것을 인정하시고, 아비멜렉이 범죄하지 않도록 하십니다(이것은 앞서 롯을 구원하신 것과 동일한 모습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그들의 상속자가 태어나리라고 말씀하신 그 시간이 채 일년이 남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18:10,14). 즉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온전히 보호하시고 이루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보지 못하는 눈과 어리석은 결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자신의 언약과 말씀을 보호하시고 온전히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오늘 우리들도 때때로 아브라함과 같은 어리석은 모습과 결정을 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지키시고 온전이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며 신뢰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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