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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4 년 7월 2일 화요일 큐티본문설명(창세기 35장 16-21절)2024-07-0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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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17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19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21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어제 본문에서 드디어 야곱은 벧엘로 돌아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고 하나님은 그러한 야곱에게 언약의 말씀을 다시 하시며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알려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벧엘을 떠나 자기 아버지 이삭의 장막이 있는 헤브론으로 계속해서 길을 걸어가는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벧엘에서 헤브론까지는 약 80 Km정도의 거리인데, 그 길을 가는 중 베들레헴을 지나 에브랏 망대를 얼마 남지 않은 곳, 즉 헤브론을 약 20Km 정도 남겨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의 고통을 시작합니다.  본문은 라헬이 심히 고생하여 난산하였다 라고 말하는데, 여기에서 고생하였다“(카솨)는 표현은 잔인하다는 의미를 포함한 극심한 고통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3 16절에서 말하는 고통(이짜몬)과 수고(에쩨브)이라는 두 단어보다 훨씬 강하고 극심한 고통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는 길 중에 라헬은 임신하였을 것이고, 라반, 에서, 그리고 세겜의 사건 중에 임신한 상태에서 극도의 긴장과 어려움을 당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긴장과 어려움으로 인해 라헬의 출산은 어려움을 겪었고 라헬의 고통은 심하였고, 결국 그 결과 라헬은 출산과 함께 사망한 듯 합니다.

 

본문에 따르면, 출산과 더불어 죽어가는 라헬에게 산파가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한다“(17)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실제적으로 라헬이 간절히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드러냅니다. 긴 세월 동안 라헬은 언니 레아와 경쟁하는데, 특히 자녀를 낳는 일에 있어 경쟁하였고, 상당히 긴 시간동안 자신이 직접 아이를 낳지 못하였기에 당시의 관습을 따라 자기의 시녀 빌하를 통해 자녀를 단과 납달리를 낳았고, 이것은 동시에 레아도 직접 아이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자녀를 얻고자 자신의 시녀 실바를 통해 갓과 아셀을 낳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합환채를 통해 레아는 다섯째인 잇사갈과 여섯째 스불론을 낳고 딸 디나도 낳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마지막에 라헬은 요셉을 직접 출산하며, 다른 아들을 직접 낳기를 소망하며 요셉“(그가 더할 것이다)이란 이름으로 부릅니다(30). 이것인 밧단아람에서 있었던 야곱의 열한 아들들의 출산의 과정입니다.

 

이제 시간과 공간을 넘어 밧단아람이 아닌, 베들레헴을 지나 헤브론으로 내려 가는 그 길에서 라헬은 그토록 원하던 또 다른 아들을 낳지만, 스스로 그 아이를 양육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러, 그 이름을 내 슬픔의 아들이라는 의미인 베노니라고 부릅니다. 즉 라헬은 자신이 스스로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을 원하고 그 목적을 위하여 언니와 경쟁하며 세상적인 방법들을 사용하였고, 결국 그것을 이루었지만, 라헬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조상의 무덤에 안장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라헬이 죽은 곳에서 조상의 무덤이 있는 헤브론까지는 20Km가 되지 않는 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체가 부패하기 때문에, 베들레헴 길에 장사하였으리라 추축하지만, 거리를 생각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라헬의 삶의 모습들을 염두에 두면, 본문은 그러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살아가며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상적인 방법들도 사용하였던 라헬이기에 앞으로 전개될 이스라엘, 즉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야곱의 삶의 후반부에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제부터 전개될 야곱의 삶은 그러한 붙잡는 자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삶이기에, 라헬로 대표되는 그런 삶으로는 살아갈 수 없음을 라엘의 죽음과 장사됨에서 드러내는 듯 합니다.

 

야곱은 라헬이 슬픔의 아들이라고 부른 베노니라는 이름을 내 오른손의 아들혹은 남쪽의 아들이라는 의미인 베냐민이라는 의미로 막내 아들의 이름을 부릅니다. 즉 그 아이 베냐민이 야곱의 손에서 양육받고 다스림을 받는 것처럼, 이제 야곱도 야곱이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서 살아가게 될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혹은 밧단아람이나 세겜이 아닌 남쪽인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당신의 삶은 어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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