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앞을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 가운데 계시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세미한 소리, 즉 말씀 가운데 엘리야를 찾으시며 부르십니다. 이처럼 다른 어떤 것이 아닌, 말씀 중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하루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40일간 광야와 사막을 건너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합니다. 본문은
엘리야가 천사가 가져다 준 음식물을 먹고 그 힘을 의지하여 길을 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하여 굴에 머무는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질문하십니다: “네가 어찌 여기 있느냐?” 정말 하나님께서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들을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왜 여기에 있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사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앞서 천사는 엘리야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고 이렇게 말합니다: “일어나 먹으로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19:7). 다시
말하면, 천사는 단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염려하지만, 정작 엘리야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전혀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호렙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반문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 이것은 앞서 천사가 말한 “가야
할 길”의 목적지는 하나님의 산 호렙이 아니었음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가 가기를 원하시는 목적지는 호렙이 아니라, 저 북이스라엘입니다.
1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를 넘어 다메섹으로 가도록 명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남쪽 끝자락인 브엘세바에서 엘리야가 다시금 회복하여 이스라엘의 북쪽 끝까지 가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엘리야는 남쪽 끝 브엘세바에서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든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며 다시금 약속의 땅,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계속해서 전해야 할 그 땅을 한걸음한걸음 밟고 북쪽 경계선까지 올라가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인 선지자로서의 엘리야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러한 소망과 사명을 포기하고 낙망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19:10). 즉 엘리야가 열심히 말씀을 전하고 능력을 보였으나, 여전히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알을 섬기고 있으며, 심지어 더 나아가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마지막 남은 엘리야의 생명조차도 빼앗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엘리야로서는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더 이상
무엇을 소망하며 무엇을 의지할 수 있겠습니까? 참 이상하게도 엘리야는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오히려 엘리야는 자신의 죽음을 바라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동굴밖으로 인도하여 산에 서게
하십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지나가십니다. 그러나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지만 그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는 계시지 않습니다. 지진이
일어나지만,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는 계시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는 계시지 않습니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보기를 원하고 두려워하는 그런 능력의 일들 속에 여호와께서는 계시지 않습니다. 엘리야는
그러한 놀라운 능력의 일들을 행하면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며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대하였으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서
갈멜산에서 기도하면서 엘리야는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그들이 알게 하옵소서”(18:37)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놀라운 능력의 일들
속에 정작 여호와께서는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놀라운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바람과 지진과 불 이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습니다(19:12). 엘리야는 그 세미한 소리를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굴 입구로 나가 섭니다. 엘리야는 그 세미한 소리 중에 여호와께서 오셨음을
즉각적으로 깨닫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여호와를 맞이하러 나아갑니다. 그리고 엘리야에게 “소리가 임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19:13). 이상하게도 엘리야는 처음과 동일한 말로 하나님께 답합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19:14). 여전히 엘리야는 실망과 절망 속에서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줍니다. 엘리야의 특별한 열심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과
지진과 불과 같은 놀라운 능력 행함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돌아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세미한 소리
중에 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돌아오게 하십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특별한 열심”을 찾고 행하고 “놀랍고 신기한 능력들과 사건들”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로는 하나님을 저버린 이들을 되돌아오게 하지 못합니다. 오직
세미한 소리로 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그분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의 은혜만이 모든 잃어버린 자들을
되돌아오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미한 소리로 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을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우리는 만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오늘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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