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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4 년 7월 10일 수요일 큐티본문설명(창세기 37장 12-17절)2024-07-1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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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14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15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16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17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어제 본문에서 17세의 소년 요셉이 꾼 꿈과 그것을 전하는 말과 태도로 인해 그의 형들이 더욱 요셉을 미워하고 그의 아버지는 요셉을 꾸짖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과 그의 아들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줍니다. 요셉의 꿈과 말로 인해 형제들은 더욱 미워하고 그 아버지 야곱은 화를 내는 불안과 불신이 있는 가족관계이지만, 표면적으로 그 가족의 삶은 전혀 문제가 없는 듯 이전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들의 삶과 관계는 이미 깨어져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으로 가서 아버지의 양떼를 돌보고(12),  야곱은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는 자기 아들들이 잘 있는지“(샬롬) 알기 위해 열 일곱살의 요셉을 보냅니다(13-14). 당시 야곱이 거주한 곳은 헤브론 골짜기“(14)로 그곳은 한국의 산들 사이에 있는 그러한 좁은 골짜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구릉지대로 이것은 그곳이 양떼를 치기에는 너무 좁아서 야곱의 아들들이 그곳을 떠나 훨씬 더 멀리 있는 세겜 지역에서 양을 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즉 야곱은 세겜지역이 어떤 위험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것을 반영하며, 또한 아들들이 양떼를 돌보기 위해 떠나 있는 기간이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길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34-35장에서 이미 일어난 두 가지 사건으로 인한 듯 합니다. 하나는 디나의 사건으로 시므온과 레위, 그리고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성의 사람들에게 행한 복수이며(34), 다른 하나는 라헬이 죽은 후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한 사건(35:22)입니다. 이것은 결국 야곱의 아들들이 상당히 거리가 먼 세겜성 지역까지 올라가 양떼를 치고 있는 이유와 관련됩니다(헤브론 골짜기에서 세겜까지는 거의 직선거리로 90Km 정도 됩니다). 아마도 르우벤은 35 22절의 사건으로 인해 더 이상 야곱과 함께 거주하지 않고 떠나 살고 있는 듯 하고, 거주지역은 아마도 세겜 지역이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cf. 37:2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함께). 왜냐하면 그곳에 야곱이 세운 가축우리와 집, 그리고 돈을 주고 구입한 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33:17, 20).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야곱은 자기 아들들이 잘 있는지“(샬롬) 알고자 요셉을 보냅니다. 한가지 이상한 것은 상당히 먼 거리이며 세겜 성 주변이 가지는 위험성을 야곱이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을 보내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요셉이 아니라 야곱의 집안에 있던 다른 종을 보내어도 될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을 굳이 보내는 것은 종을 보내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즉 종을 보내었을 때, 그 종이 되돌아와서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야곱의 아들들에 대해 정확하게 잘 알릴 수 없기 때문인 듯 합니다. 따라서 이미 형들의 잘못에 대하여 아버지에게 잘 알리던 요셉(1)을 보냅니다.

 

아버지 야곱의 명령을 따라 열일곱 살의 요셉은 상당이 먼 거리를 여행합니다. 그 여행길의 중간쯤에는 자기 어머니 라헬의 무덤이 있고, 그 여행길 끝은 상당히 위험스러운 세겜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자신을 심히 미워하는 자기 형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양떼를 치는 상황이기에 형들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이 여행길을 요셉에게 있어 상당히 부담스러운 길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명령을 성실하게 수행하고자 합니다. 세겜 지역에서 요셉은 형들을 찾고자 들에서 방황합니다(15). 우리 번역의 방황“(타아)이라는 말은 동요하다 비틀거리다 길을 잃다는 의미로 요셉의 상황과 그 마음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상하게도 요셉은 형들을 만나지 못했음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 들판에서 계속 형들을 찾아다닙니다. 형들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을 듯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런 면에서 요셉은 아버지의 명령을 신실하게 행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렇게 방황하는 요셉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 네가 무엇을 찾느냐고 묻습니다. 요셉은 내 형들을 찾으오니 그들의 양치는 곳을 가르쳐 주소서“(16)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요셉이 찾는 것에 대한 정확한 답을 알고 있고 요셉에게 알려줍니다: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17). 그리고 요셉은 형들의 뒤를 따라 도단으로 가서 형들을 만납니다.

 

어떤 사람과 요셉의 이 대화는 상당히 이상합니다. 잘 차려 입은 한 소년이 세겜근처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상당히 위험스러운 일입니다. 실제적으로 그가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만나는 그 사람이 길을 잃고 헤메는 이 잘 차려입은 소년을 헤치는 것이 오히려 더 그럴 듯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만난 그 사람이 요셉의 형들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을 가능성은 더욱 없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대화에서 요셉 자신의 정체나 형들의 정체를 구체적으로 그 사람에게 말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이미 요셉과 그의 형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 사람은 형들의 대화를 이미 들었고,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익명의 그 사람이 아마도 야곱과 관련이 있는, 즉 야곱의 종들 중의 하나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익명의 그 사람이 하는 역할은 사실상 길을 잃고 헤매며 위험에 빠진 요셉의 길잡이 역할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익명의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요셉의 길을 인도하신다고 이해하게 됩니다.

 

한가지 더 놀라운 것은 길을 잃고 헤매던 요셉은 그 사람의 안내를 받은 후, 홀로 형들이 있는 도단까지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들판에서 혼자 길을 잃고 헤매는 입장에서 계속해서 홀로 그 길을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듯 합니다. 한편으로 아버지의 명령을 신실하게 행하고자 하는 모습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홀로 먼 거리의 집으로 돌아가기보다 훨씬 가까운 도단으로 가서 형들을 만나고 형들의 도움을 얻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듯 합니다. 어쩌면 요셉은 익명의 그 사람을 만난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했을 듯 합니다. 그러나 이 순간의 요셉은 알지 못하지만,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듯, 그렇게 찾아간 도단에는 요셉이 기대한 다시 만난 기쁨과 환영, 그리고 평안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러한 내용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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