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7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8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9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0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11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어제 본문을 통해 유다가 약속을 땅을 떠나 가나안 족속의
삶과 전혀 다른 것이 없는 죄의 영향 아래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한 유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들도 하나님과
관계없이 자기 마음대로 세상의 모습을 따라 악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유다는 자신과 동일하게 장자
엘을 위해 가나안 여인 다말을 데려오는데, 이것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이 가나안 여인이 아니라 밧단아람의 여인을
아내로 삼은 것과는 구별됩니다. 아브라함의 경우(24:3-5)와 이삭의
경우(28:1-4)를 볼 때, 가나안 여인을 아내이 아니라 내고향 내
족속(밧단아람)의 여인을 아내로 삼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언약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유다가 자신 뿐만 아니라 자기 장자 엘을 위해서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취한 것은 이스마엘(21:21)이나 에서(26:34; 28:9)와 같이 자신의 뜻과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언약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유다의 아들들의 악함에 대하여 언급하는데, 먼저 유다의 장자 엘은 하나님 앞에 악하여 하나님이 그를 죽입니다(38:7). 본문은 엘이
어떤 면에서 악한지, 그리고 하나님이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 엘을 죽이셨는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
단지 엘이 악하였고 하나님이 그를 죽이셨다라고만 언급합니다. 장자 엘의 악함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유다의 둘째인 오난의 악함과 죽음에 대한 서술에서 어느 정도 드러납니다: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10). 즉 엘의 죽음 후 당시의 관습을 따른 아버지의 명령으로 오난은 형수 다말과 동침하여 아이를 낳아 형인 엘의 아들로 삼게 하여 유다의
장자의 집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오난은 외적으로는 마치 그러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듯 하게 행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것을 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오난의 행동은 당시 문화적 상황에서 가장 우선적이며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자손을 이어가는 것“이라는 의무와 책임을 고의적으로 저버린 것인데, 그 결과에 대한 표현이 엘의 경우와 동일하게 „여호와 앞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죽이셨다“는 것을 볼 때, 오난 뿐만 아니라 엘의 경우도 이와 관련되어 있는 듯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다는 자신의 아들들인 엘과 오난의
그러한 악함과 그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인지를 전혀 깨닫지 못한 영적으로 눈이 먼 모습을 보여줍니다. 유다는 세상적인 삶의 방식과 동일하게 이 일에 대하여 대처하는데, 자신의 셋째 셀라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장성하기까지 다말에게 자기 아버지의 집에 있으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셀라도 그 형들같이 죽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11). 즉 이미 유다는 다말을 통해 자신의 자손을 이어가지 않을 것임을 결심한 상태입니다.
이것은 다말을 자기 집안에서 영구히 쫓아내기 위하여 무언가 꼬투리를 잡거나 핑계거리가 생기기를 의도적으로 기다리는 것임을
드러냅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계대결혼“은 „자손을 이어가는 것“을 넘어서서 남편이 죽고 아들이
아직 없는 여인들을 위한 보호와 부양을 위한 조치입니다. 오늘날의 표현을 빌리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를 위한 것인데, 이것을 행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그러한 여인들을 죽음에
내모는 것과 같은 결과입니다. 따지고 보면, 유다가 며느리 다말을 통해
자손을 얻지 않으리라고 결심한 것은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로 며느리 다말에게 „이혼 증서“와 같은 법적인 절차를 밟아 다말을 그녀의 아버지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제일 적절한 방법입니다. 이 경우 다말은 자유롭게 새로이 결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단지 유다가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다말이 가지고 온 결혼지참금 때문인 듯 합니다. 즉 다말에게 이혼의 원인이 없기 때문에 결혼지참금을
돌려주어야 하는데, 유다는 그것을 행하지 않기 위해서 다말을 자기 아버지 집에서 기다리라고만 말할 뿐입니다.
이렇게 오늘 본문은 유다와 그의 아들들의 악함을 드러냅니다. 오늘 나와 가족의 영적인 상태는 어떠한지 돌아보며 죄에 민감한 영적인 깨달음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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