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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21년 1월 25일 월요일 큐티본문설명(왕상17:17-24)2021-01-25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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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 후에 그 집 주모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엘리야가 저에게 그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취하여 안고 자기의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로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 어미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엘리야와 사르밧과부는 병의 기름과 밀가루가 마르지 않는 놀라운 경험을 하지만, 사르밧과부의 아들이 병으로 죽게 되자 각각 다시 한번 믿음의 시험과 결단앞에 서게 됩니다. 여인은 자신의 불행에 엘리야를 비난하지만, 엘리야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고 아이를 살려주십니다. 엘리야처럼 믿음의 시험과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 앞에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어제 본문에서 엘리야와 사르밧과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참으로 이루어지는 은혜의 경험을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러한 엘리야와 사르밧과부에게 또 다른 어려움과 슬픔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죽음의 문제입니다. 사르밧여인은 가뭄으로 인해 먹을 것이 없는 중에, 마지막 남은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먹고 죽으리라 하였던 상황에서 먹을 것이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생명을 연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아이는 병이 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 숨이 끊어집니다.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격입니다. 더구나 어머니의 입장에서 아들만 병들어 심히 아프다가 죽게 되었다는 것은 이전보다 더욱 슬픈 일입니다. 참 이상하게도 아이가 병이 들어 심히 앓는 중에도 이 여인은 엘리야에게 아이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고 또 엘리야도 아이의 병을 고치려고 나서지 않습니다. 병의 가루와 기름이 없어지지 않아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이의 병을 고치도록 요청하거나 나서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한편으로 이 여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이 여인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고 섬기는 사람이 아닌 이방의 여인이며 아마도 바알과 아세라는 섬기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의 병과 죽음이 자신의 죄로 인한 것으로 생각하여 감히 하나님의 사람에게 요청하지 못한 듯 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자신의 아들이 죽었을 때, 이 여인은 자신과 관계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자신의 죄를 생각나게 하고 그 죄에 대하여 자신의 아들을 죽게 하려고 찾아왔다고 비난합니다. 달리 말하면, “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다면 자신의 아들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굶주림과 그로 인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죄에 대하여 죽음으로 처벌하시는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모습입니다. 즉 구원자가 아닌 심판자의 모습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참 이상하게도 엘리야는 이러한 과부의 비난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죽은 아이를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 이 여인이 자신에게 쏟은 비난과 비슷하게 하나님을 비난합니다.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이들이 죽게 하셨나이까”(20). 좀더 본문의 뉘앙스를 살려 번역하면, “주께서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까지도 재앙을 내려 그 아들을 죽게 하셨습니다입니다. 여기에서 엘리야는 자신이 머무는 곳마다 재앙이 임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가 그릿시냇가에 머물 때, 그 시내가 말랐습니다. 이제 그가 사르밧 과부의 집에 머물 때, 그 집에까지 재앙이 임합니다.

그러나 앞서 엘리야는 그런 재앙이 임하는 중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있음을 이미 경험했고 그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메말라 가는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를 통해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이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이었으나 그것이 끊어지지 않는 은혜를 기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야는 하나님을 향하여 은혜를 구합니다. 단순히 먹을 것을 넘어선 죄로 인한 죽음을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간구합니다: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21).

 

놀랍게도 여호와께서는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에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납니다. 즉 본문은 아이가 살아난 이유를 여호와께서 들으셨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이것은 구약에서 단 두 번 나오는 죽은 자가 살아난 이야기 중 첫 이야기입니다(열왕기하 4 18-37에서 엘리사 선지자와 관련하여 수넴여인의 아이를 살아난 이야기가 두 번째입니다. 그러나 두 이야기의 상황과 과정은 상당히 다릅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들으심에 응답하여, 사르밧 과부는 2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없어져 가는 통의 가루와 기름이 계속해서 남아있었던 경험을 넘어서, 자신의 아들의 죽음과 다시 살아남을 통해 이 여인은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신실)”한 줄 알고 인정합니다.

 

이러한 본문의 내용은 우상숭배와 죄에 대한 심판으로 가뭄과 굶주림과 죽음, 그리고 멸망을 향해 달려가며 고통 중에 있던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빛과 소망을 던져줍니다. 비록 그들의 죄로 인한 재앙이지만, 그런 재앙 중에도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엘리야가 부르짖었던 소리를 들으신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신 것처럼,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바알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소리를 들으시고먹을 것과 풍요를 넘어서 죽음으로부터 구원받는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심을 인정하고 주님께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며 구원의 은혜를 위하여 간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신실)한 줄 알게 될 것입니다. 엘리야처럼 우리들도 믿음의 시험과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의 말씀이 진실(신실)하심을 경험하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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