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은 비록 엘리사를 찾아왔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모습과 방법으로 엘리사가 반응하며 명령하자, 화를
내며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들의 충고를 듣고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였을 때, 나아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말씀이더라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은혜를 받는 하루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어제 본문에서 우리는 어린 소녀와 이스라엘 왕의 대조되는
상황과 신앙적 모습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은 문둥병자 나아만이 변화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말과 병거를 끌고 엘리사의 집 문에서 선 나아만에게 엘리사는 직접 맞이하지도 않고 직접
병을 고치기 위해 어떤 행위나 마술적 선언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환을 보내어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라 그리하면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고 말만 전합니다. 이러한 엘리사의 모습은 나아만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들을 완전히 뛰어넘습니다. 이스라엘 왕조차도 자기 앞에서 벌벌 떨며 두려워하고, 또한 많은 아람의 예언자들도 온갖 방법들을 동원하여 자신의 병을 치료해 보려고 한 것을 경험한 나아만에게 있어
이러한 엘리사의 모습은 전혀 그럴 듯 하지도 않고 얼토당토 않습니다. 보잘 것없어 보이며 많은 경우
흙탕물인 요단강에 비해 다메섹(레바논)의 높은 고원에 있는
아마나 산(아4:8)에서 흘러내리는 바르발 강은 넓고 깊을
뿐만 아니라 맑고 차가운 물입니다. 이제껏 “큰 용사”로 행하는 일마다 “큰 일”로
칭송받은 나아만에게 엘리사가 시킨 일은 보잘 것없어 어린아이조차 할 수 있는 일이며 특별한 일이 아닌 매일의 일에 불과합니다. 나아가 당시에는 병을 고치는 능력을 (신이) 어떤 개인에게 부여한 특별한 능력으로 생각하고 그 능력을 소유한 사람은 자신의 뜻대로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나아만은 거기에는 자신의 믿음이나 어떤 순종 같은 것이 전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아만은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는 일로는 자신의 병이 나을 것이라고 조금도 기대하지 못하며 오히려 헛걸음했다는 생각에 분노하여 떠납니다. 달리 말하면, 나아만은 엘리사의 지시가 세상적 관습과 자신의 생각에
전혀 그럴 듯 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나아만의 마음과 태도는 그의 종들의 한 마디
말 때문에 바뀝니다: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라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이 종들의 말 한마디로 인해 나아만이 생각과 태도를 바꾸어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왜 나아만이 그렇게 생각과 태도를 바꾸었는지는 본문에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언급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러한 종들의 한마디 말에 생각과 태도를 바꾸어 엘리사가 말한 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병이 나았다는 결과만 언급할 뿐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놀라운 사건”이나 “특별한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일하실 때도 있지만, 그 반대로 “전혀 그럴 듯 하지 않은 것” 이나 “매일의 삶의 행보”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일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어떤 매개체(요단강/바르발)나 사람의 행위(손을
흔들어)나 사건자체(나병을 고칠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은 우리들의 생각과 관습, 혹은 우리들의 기대를 뛰어넘어서 가장 단순하고 매일의 삶에서 반복되는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어쩌면 이것은 단지 나아만을 향한 것일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라고 한탄한 이스라엘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선언이기도 합니다. 당시 북이스라엘 왕과 사람들은 어떤 놀라운 일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욕심을 이루어주고 채워줄 것을 기대하며 우상들을 섬기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들의
생각과 욕심을 이루어주고 채워주는 놀라운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에게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매일매일 살며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러한 매일매일의 순종의 삶은 우리의 생각에 놀라운 것도 아니고 우리의 삶을 획기적으로 한 순간에 변화시키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우리가 그토록
기대하는 어떤 기적적인 일들을 실행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나아가 그러한 매일의 순종의 삶은 크고 놀라운
일도 아니어서 사람들로부터 칭송받는 일도 아니며 자랑거리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하루하루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쳐서 우리는 믿음으로 거듭난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갑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말씀이더라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은혜를 받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며 이런 매일매일의 순종의 삶을 통해 참으로 다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들로
자라가는 우리들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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