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악한 세대 속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이 악한 세대의 모습과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오직 천국백성으로서의 삶을 오롯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이러한 천국백성의 삶을 사셨던 우리 주님의 뒤를 따라 우리
또한 천국백성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어제 본문에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은 의”, 주님께서 직접 “완전하게 하시며 다 이루시는 그 의”는 무엇인지를 “맹세”(33-37)와 “보복”(38-42)이라는 두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십니다. 먼저 맹세와 관련하여 주님께서는 “헛(거짓)맹세를 하지 말라”(레19:12; 6:3-5;시24:4)와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민30:2; 신23:21-23; 사50:14; 전5:4)라는 구약 율법의 두 가지를 언급하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34)고 명령하십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으로 여겨 십계명을 어기는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출20:7; 신5:11),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하늘, 땅, 예루살렘, 자기자신 등을 걸고 맹세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이 “악한 마음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지적하십니다(37). 왜냐하면 실제로 어느 것 하나 하나님과 관련이 없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고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며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입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것으로 맹세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과 관련되기 마련인데, 맹세하는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그렇지 않은 척하며 마치 자신의 맹세가 십계명을 어기는 것이 아닌 듯 스스로와 다른 이들을 속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자기자신의 머리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그 이유는 사람의 능력으로 머리카락 하나라도 검거나 희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이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할 수 있는 것처럼 스스로와 다른 사람을 속이면서 맹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해야 하는 착한 행실과 의, 즉 예수님 자신이 완전하게 하시며 다 이루시는 그 의는 맹세와 관련하여 어떻게 구체화됩니까? 주님께서는 “옳다 아니라”는 정직한 응답을 말씀해 주십니다. 즉 주님께서는 “맹세”에는 이미 속이려는 악한 의도가 있음을 지적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참된
백성은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옳다 아니다”를 말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다음으로 주님께서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출21:22-27; 레24:19-20;신19:19)는 율법을 예로 드십니다. 사실 이 율법은 “의도성을 가진 범죄를 제한하는 것”과 “지나친 보복을 제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선언하시면서, 악한 의도를 가지고 범죄를 하는 것이나 악한 의도를 가지고 지나친 보복을 행하는 것을 “알면서도 더 해주도록” 말씀하십니다: “오른편 뺨을 치는 자에게 왼편 뺨도 돌려대며, 속옷을 빼앗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주며,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면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생각해 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이러한 삶의 모습을 우리의 능력과 지혜로는 결코 이 땅 속에서 살아갈 수 없음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주님께서 이 땅에서 사시면서, 직접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빌라도 총독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발하자, 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질문하자 주님께서는 “네 말이 옳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외의 많은 고발과 증언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십니다”(마 27:11-14).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을 비방하며 비난하며 십자가에 못박은 이들을 용서하시며 그러한 죄인들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서 보여주신 모든 모습들은 바로 이러한 모습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악한 세대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법과
지혜를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구체적으로 그 방법과 지혜를 따라 사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악한 세대의 모습과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오직 천국백성으로서의 가치관과
삶을 오롯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을 믿고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여 이 땅에서 이러한
천국백성의 삶을 사셨던 우리 주님의 뒤를 따라 우리 또한 천국백성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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